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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독일 남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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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996,651명 (2016 추계) |
면적 | 2,569.69㎢ |
대륙 | 유럽 |
국가 | 독일 |
요약
독일 남서부의 주.
Saar라고도 함.
남쪽으로 프랑스, 서쪽으로 룩셈부르크, 북쪽과 동쪽으로 라인란트팔츠 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주도는 자르 강 유역의 자르브뤼켄이다.
역사
켈트족과 게르만 프랑크족이 이 지역의 최초 거주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그뒤 이 지역은 카롤링거 제국과 동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중세까지 여러 개의 작은 지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은 자르브뤼켄 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381~1793년에 자르브뤼켄은 나사우-자르브뤼켄 백작들의 통치를 받았다. 자르브뤼켄 주변지역은 비록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살았으나,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이후 150년간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684년 레겐스부르크 휴전협정에 의해 프랑스의 한 주가 되었으나, 1697년 프랑스는 레이스웨이크 조약으로 인해 자얼루이 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내주어야만 했다.
1792~1815년에 프랑스는 라인 강의 서안 전역과 함께 자를란트를 다시 점령했다. 1815년 나폴레옹의 최후 패배로 프랑스는 이곳의 대부분을 프로이센에게 양도해야 했고, 프로이센은 그 지역을 프로이센 라인 지방의 일부로 만들었다. 1871년 알자스로렌이 독일 제국에 합병되자 석탄과 로렌의 철광석 매장을 기반으로 하여 급속한 산업발달을 이루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탄광들은 프랑스에게 인도되었고, 자를란트는 15년간 국제연맹의 행정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한이 끝날 무렵 주민들에게 프랑스와 독일 양국 간에 자르의 소속을 선택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1935년 1월 13일 실시된 실제 국민투표에서 자르 주민의 90% 이상이 자르가 독일에 반환되는 것을 찬성했고, 이같은 표결사항은 곧 합법적으로 실현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군대가 자르를 점령했고, 2년 후 초대 자르 주 의회는 프랑스와의 경제적인 통합 안에서 자르 주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헌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1954년 독일의 새로운 번영이 대부분의 자를란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 그해에 프랑스와 독일은 1명의 유럽인 행정장관의 관리하에 자를란트의 자치를 허용하는 법령에 동의했다. 그러나 새로운 법령은 투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만 했고, 1955년 10월 23일에 실시된 투표에서 자를란트 유권자 중 68%가 독일로부터 자를란트의 분리를 함축하는 그 법령을 거부했다. 결국 프랑스는 이 지역을 독일에 반환하는 것에 동의했고(1956), 1957년 1월 1일 자를란트는 독일연방공화국의 10번째 주로서 지금의 지위를 획득했다.
자연환경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자를란트의 심장부는 자르 강이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구릉지대이다. 자르 강 계곡에는 부분적으로 광대한 석탄 매장층이 있어서 탄광과 탄광촌들이 숲이 우거진 시골지역에 흩어져 있다.
자르브뤼켄에서 푈클링겐까지 강 유역을 따라 용광로와 제철소들이 집중되어 있다. 이 저지대는 북쪽으로 훈스뤼크 고지대의 가장자리와 남쪽으로 프랑스 로렌의 가파른 비탈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블리스 강과 프림스 강이 자르 강으로 흘러들며, 바이스키르허 고원(695m)이 가장 높은 지대이다. 기후는 주로 대륙성이지만 적당히 더운 여름이나 따뜻한 겨울에서 해양성 기후의 영향도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연강수량은 약 800㎜에 달한다.
이 지방의 대부분에 농촌이나 광산촌이 들어서 있으며, 현저하게 공업적인 특성을 지닌 유일한 지역은 자르브뤼켄의 근교인 브레바흐와 푈클링겐 사이에 14㎞ 길이로 뻗어 있는 대상형의 지역인데, 이 지방의 대규모 제련소 중 여러 개가 그곳에 있다.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자르 강 계곡 바로 북쪽을 따라 있는 자르브뤼켄·딜링겐·노인키르헨을 잇는 삼각지대이다. 자르브뤼켄은 이 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다른 도시 지역으로는 노인키르헨·푈클링겐·자얼루이 등이 있다.
주민
주민의 대다수는 로마 가톨릭교도이고, 나머지는 복음주의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속한다. 공용어는 독일어이나 프랑스어도 쓰인다. 광업과 철생산 공업이 주요 경제 활동이었던 지난 세기에는 인구가 4배로 증가했다. 19세기 당시 이곳의 탄광에 독일 전역으로부터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개발이 덜 된 지역들로부터의 인구유입으로 인구증가가 계속되었다.
경제
고도로 발달된 공업활동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주 총생산의 대부분이 공업과 광업에 의존하며, 서비스업·무역·운송업·농업이 그뒤를 잇는다. 공업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석탄 채광, 철·강철의 생산과 제조 등에 종사한다. 석탄층들은 자얼루이와 서쪽의 푈클링겐으로부터 동쪽의 노인키르헨까지 약 32㎞ 거리에 걸쳐 자리잡고 있으며, 석탄 광맥은 최고 1,200m 깊이까지 뻗어 있다.
역청탄으로부터의 코크스 추출과 인이 많이 함유된 철광석 제련이 19세기 이래 철광산업의 성장을 도와주는 기반이 되어왔다. 철과 금속의 가공산업으로는 강철 생산과 기계류·자동차류의 조립 등이 있다. 다른 중요한 공업으로 도기류·직물·식품 제조업이 있다. 농업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다. 주요농산물은 곡물·감자·야채·과일·낙농제품·가축 등이다. 농산물은 도시 인구의 수요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되나 소량의 낙농제품은 다른 주에, 그리고 소·육류·빵은 해외로 수출된다.
프랑스는 이 주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프랑스로의 주요수출품으로는 철봉·주철·판금·연장·철사·석탄·코크스·도자기 등이 있다. 프랑스로부터의 수입품목에는 육류·육류제품·자동차·판금·철광석 등이 있다. 채광·전기기계 장비를 제외한 공업제품의 절반가량은 다른 주로 판매된다. 특히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다. 초고속도로가 이 주와 라인마인 지역을 연결하고, 다른 도로들은 파리·룩셈부르크·카를스루에·쾰른 등과 이곳을 이어준다.
철도 체계 역시 광범위하며, 간선철도들은 전동화되어 있다. 또한 철로가 여러 개인 복선궤도 철도가 있다. 자르 강의 운하구역을 따라 연결되는 수상 운송도 중요하다. 자르브뤼켄엔스하임에 있는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 모두를 취급한다.
문화
교육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일련의 기술 고등학교들과 자르브뤼켄의 자를란트대학교가 있다. 시립극단, 라디오 자를란트, 자르브뤼켄 현대미술관 등을 비롯한 문화기관들은 독일 및 프랑스측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다. 12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고, 많은 가창·음악·연극단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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