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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BC 2925년경 이집트 통일로 문명의 절정기에 이르렀고 약 3,000년 후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헬레니즘뿐만 아니라 셈족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 구심점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지배가 642년에 끝나자 이슬람교가 지배적 종교가 되었고 이후 1517년까지 지속된 맘루크에 의해 이집트의 아랍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었고 문명도 쇠퇴했다.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독립을 얻고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1956, 1967년에 이스라엘과 2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실패로 끝났다. 1982년 잃었던 시나이 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했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BC 2925년경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통일되었는데, 이는 메네스 왕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통일로 인해 이집트 문명은 절정기에 들어섰고, 이후 약 3,000년 동안 본토 출신들이 계속해서 지배자의 위치를 이어갔다. 역사가들은 31개 왕조에 걸쳐 BC 332년까지 계속된 이집트의 고대사를 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구분한다.
피라미드는 고왕국의 유산이며, 오시리스 숭배와 조각의 세련미는 중왕국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제국시대와 유대인의 출애굽은 신왕국에 속한다(→ 이집트 미술, 이집트 법, 이집트 종교).
아시리아의 침략은 BC 7세기에 일어났으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이 이집트에 왕조를 세운 것은 BC 525년이었다.
BC 332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략으로 마케도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이 왕조시대에는 이집트의 통치자들이 헬레니즘 세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시는 헬레니즘뿐만 아니라 셈족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머지 않아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최고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 구심점이 되었다.
로마인은 BC 30∼AD 395년에 이집트를 점령했으며, 그후 이집트는 행정적으로 동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관용령을 내림으로써 이집트의 공식 교회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리우스·아타나시우스·오리게네스·클레멘스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활동 무대였다. 비잔틴 제국의 이집트 지배는 비잔틴 군대가 아라비아의 침략군과 3년의 무력 충돌 끝에 이집트에서 철수한 642년에 끝이 났다. 그후 200∼300년 내에 이집트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집트는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의 일부였다.
그후 969년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국의 중심이 되었으며, 상당한 독립과 중요성을 획득했다. 1171년에 이어 이집트는 아바스 왕조의 지배로 귀속되었다.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이 무너지고 맘루크들이 득세한 것은 1250년의 일이었다. 맘루크들은 아라비아 세계의 군대를 증강하기 위해 이용된 비아라비아·비이슬람의 노예들이었다. 그들이 이집트에 세운 왕조는 151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집트를 이슬람 세계의 동부 아랍어 사용권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때까지는 이집트의 아랍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어 이스탄불(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스리는 속주로 되돌아갔다. 맘루크 왕조 말기에 시작된 경제의 쇠퇴는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이집트 문명도 쇠퇴했다. 1798년 프랑스군의 침략은 불과 몇 년 동안이었지만 이집트를 유럽의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충분했다.
프랑스군이 떠난 뒤 이집트는 무하마드 알리의 수중에 들어갔다. 알바니아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알리는 오스만을 명목상의 종주국으로 하는 하나의 왕조와 제국을 일으켰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치부(致富)와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집트는 영국에 막대한 빚을 졌고, 영국은 1882년 내란의 와중에 기회를 틈타 이집트를 점령했다(대영제국).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명목상의 독립을 얻고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타도되고,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이집트 본토 출신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그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잠시나마 시리아 및 예멘과의 연방 수립을 시도했으며,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했다. 1956, 1967년에 이스라엘과 2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엘 사다트는 나세르가 시행했던 강도 높은 사회주의 정책의 일부를 파기하려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공격해(1973) 시나이 반도의 작은 영토를 되찾았다.
그후 중동평화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81년 10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밑에서 부통령직을 맡고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가 그뒤를 계승하여 사다트의 평화주도정책을 계속했으며, 1982년 이집트는 1967년에 잃었던 시나이 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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