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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후생학파

다른 표기 언어 利用厚生學派 동의어 중상학파, 重商學派, 북학파, 北學派

요약 조선 후기 실학의 한 분파로 상공업 발달을 중시한 학파.

실학은 조선 후기 특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산출된 사상으로서 무엇보다도 공리공담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그것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다.

나아가 실제 사회에 이용될 수 있는 이용후생의 학문이었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수록된 '이용'이란 백성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각종 기계나 운송수단 등을 말하며, '후생'이란 의복이나 식량 등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실학의 흐름은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와 박지원·박제가·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및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實事求是)학파로 대별된다.

박지원(朴趾源)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

ⓒ Park Ju-su / wikipedia | Public Domain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당시의 관념적인 주자학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을 지향하여 실용과 실증을 창도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그중 이용후생학파는 상공업의 유통 및 생산기구, 일반기술면의 발전을 지표로 하고 있어서 중상학파라고도 하며, 개혁의 모델을 청조(淸朝) 문물로 두고 있어서 북학파라고 지칭되었다.

박지원〈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에서 청국인들에 대해 "집 주위를 둘러본즉 고르고 단정하여 어느 하나도 함부로 한 것이 없거니와 한 물건이라도 난잡한 것이 없다. 이렇게 한 연후에야 물건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물건을 이용한 연후에야 생활이 넉넉할 수 있는 것이요, 생활이 넉넉한 후에야 마음을 곧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열하일기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연암집〉 속집 권1에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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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기물을 제대로 쓰지 않고서도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드물 것이다"라고 하여 이용후생의 과학적 생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박지원의 사회개혁사상은 농업경제에 입각한 것으로 대토지사유화를 배제하고 농업생산력을 높여 농민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함에 있었다. 한전론의 구상이나, 〈과농소초〉의 편찬에서 이같은 논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생산력 발전을 위하여 농업을 기본으로 인정하면서도 광업·수공업·임업 등을 비롯하여 교통·운수·상업·대외무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만이 '이용후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모두가 자기의 직업에 안착하여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통운수 시설의 발전을 통해 군현내의 자급자족적 자연경제의 울타리를 넘어선 국내시장의 통일을 염두에 두었고 부국강병을 위한 광산자원의 적극적 이용과 산림개발을 주장했다. 한편 상공업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화폐문제를 올바르게 개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은화를 국제무역에 사용하는 대신 국내에서 화폐로 사용하자는 것으로 국내의 은을 전부 국가에 바쳐 5냥·10냥 짜리로 주조하여 1/101세만 받고 도로 내주어 자유롭게 유통시키자는 것이었다. 또한 법화인 상평통보의 가치 하락화를 막기 위해 낡은 엽전과 새 엽전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단위를 달리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박제가는 농업보다 상업에서 사회발전의 계기를 찾으려 했다.

상업을 발달시키려면 대부분의 실학자들조차 미덕으로 여겼던 봉건적 절검사상을 배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북학의〉 내편 시정(市井)조에서 소비는 단순한 소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자극하는 것이라 주장했고, 생산과 소비의 유기적 관계를 해명함으로써 이를 매개하는 상업의 중요성을 천명했다. 따라서 그의 생각도 상업이 발달하면 농업과 수공업도 아울러 발달한다는 중상적 경제이론에 도달해 있었다.

박제가의 화폐경제 발달론의 본질은 국가의 경제력을 증대시켜 이용후생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상업이 주가 되면서 농업·공업이 유기적으로 발전해야만 가능했다. 이를 위해 수공업자에 대한 국가적 수탈의 금지, 대량 생산체제의 구축, 농업기술의 개량을 통한 농업생산성의 증진과 상업적 농업이 실시되어야 했다.

동시에 국가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통상을 통한 재화의 증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밀무역을 양성화시켜 정상적인 외국무역을 발전시킬 것과 충청도·전라도 일대의 장진·은진·여산 등에 무역항을 열고 남중국 및 산둥[山東] 지방과 통상하다가 국력이 자라면 일본·안남·위구르 등 무역대상국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해외통상론은 단순한 경제발전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습득과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데 있었다. 이와 같이 이용후생학파의 상공업정책론은 점차 성장해가는 상공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며, 봉건사회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시대적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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