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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병자호란 때의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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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국가가 외침(外侵)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정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민병.

1627년(인조 5) 1월 후금(後金:뒤의 淸)의 침입으로 관군이 잇달아 패하면서 의주·곡성·안주·평양 등이 점령되자, 조선 정부는 공주로 피난함과 동시에 서둘러 화의를 모색했다. 그러나 의주·용천·철산·선천·곽산 등 청천강 이북지역에서 지역민들은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후금군에 대항했는데, 특히 용골산성의 정봉수(鄭鳳壽) 및 용천의 이립(李立) 부대가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호남 등 후방지역에서도 의병을 모집하여 한 곳에 집결시켜 전장에 나감으로써 관군의 무력함을 극복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어 1636년 12월 청이 대규모로 침입하여 관군들이 청천강 이북을 포기하고 도주하자, 조선 정부는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서둘러 피난함에 따라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한 채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반면 많은 민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남한산성과 강화도 방어전에 참전했으며, 평산의 이진형, 해주의 유즙, 평양의 조유부·김지구, 곽산의 홍천감·이여각 등의 의병부대들이 청군의 후방에서 계속적인 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정묘호란·병자호란 때의 의병의 활동은 16세기말 임진왜란 때의 전국적인 의병의 활동에 비해 훨씬 미약했다.

그 주된 원인은 임진왜란 이후 계속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 그리고 사회적 불안의 연속 등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일반 민의 신뢰감이 완전히 상실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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