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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139, 중국 장시 성[江西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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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193, 중국 |
국적 | 중국, 송(宋) |
요약 이상주의적인 성리학자였으며, 같은 시대의 위대한 성리학자이자 합리주의자였던 주희의 경쟁자였다. 그의 사상은 3세기 이후에 명대의 성리학자 왕양명이 새로이 다듬었다. 이들을 심학파 혹은 두 위대한 대표자의 이름을 따서 육왕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희가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를 강조했던 데 반해, 그는 도의 가장 높은 지식은 내면의 성찰과 자습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습득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선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이는 사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여 그 선이 물욕으로 더럽혀지고 없어졌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육구연은 정부의 수많은 요직을 거쳤지만, 생애의 대부분은 학문을 가르치고 강의하는 데에 바쳤다.
자는 자정, 호는 상산. 이상주의적인 성리학자였으며, 같은 시대의 위대한 성리학자이자 합리주의자였던 주희(朱熹)의 경쟁자였다.
그의 사상은 3세기 이후에 명대의 성리학자 왕양명(王陽明)이 새로이 다듬었다. 이들을 심학파 혹은 두 위대한 대표자의 이름을 따서 육왕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육왕학파). 심학파는 더 우세한 학파로서 정이와 주희가 중심인물인 정주학파에 반대된다.
육구연은 정부의 수많은 요직을 거쳤지만, 생애의 대부분은 학문을 가르치고 강의하는 데에 바쳤다. 주희가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를 강조했던 데 반해, 그는 도(道)의 가장 높은 지식은 내면의 성찰과 자습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습득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선(善)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이는 사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여 그 선이 물욕으로 더럽혀지고 없어졌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저작들은 〈상산선생전집 象山先生全集〉에 모아져 출판되었다. 1217년 그에게 문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1530년 그의 위패는 명조의 중앙 유교사원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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