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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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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나폴레옹 전쟁 당시 작센 지방의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에서 벌어진 전투(1806. 10. 14).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라고도 함.

12만 2,000명의 프랑스 군대와 11만 4,000명의 프로이센·작센 군대가 맞붙은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프리드리히 2세 시대의 프로이센 구식군대를 격파했고, 그 결과 1807년 7월 틸지트 조약에 따라 프로이센의 영토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1806년 7월 러시아와 비밀 동맹을 맺은 후 전쟁 준비를 했다. 10월초 브룬스비크 공작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프로이센·작센 군대는 나폴레옹의 서부 병참선을 위협하기 위해 작센을 지나 서쪽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동맹군이 프로이센 군대와 합세하기 전에 엘베 강을 차단한 후 프로이센 군대를 고립시켜 공격하기 위해 튀링겐 숲을 지나 신속히 북쪽으로 진군했다.

프로이센 군대는 후미에서 공격해오는 프랑스군과 싸우기 위해 방향을 돌려야 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공작 휘하의 병력 6만 3,000명을 아우어슈테트에 배치했으며 호엔로에 잉겔핑겐의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공이 이끄는 약 5만 1,000명을 바이마르와 예나 간의 24km 길이의 전선에 배치했다. 그해 10월 14일 동이 트자마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9만 6,000명 병력 중 약 5만 4,000명만을 움직여 예나에 있는 호엔로에 잉겔핑겐 병력 3만 8,000명을 공격했다. 오후 3시경 나폴레옹 군대는 그들과 1만 3,000명의 증원군을 패퇴시켰다. 한편 북쪽으로 21km쯤 떨어진 아우어슈테트에서는 루이 니콜라 다부가 지휘하는 2만 6,000명의 프랑스군 제2부대가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공작의 프로이센 주력부대와 마주쳤다.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공작은 월등하게 우세한 전력을 여러 개의 소규모 공격부대로 분산시켰는데, 이로써 다부는 6시간 동안 굳건히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공작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자, 국왕이 지휘를 맡았다. 예나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로이센의 공격은 힘을 잃었다. 다부는 포병대를 이동시켜 프로이센군 전선 전체에 걸쳐 타격을 가했다. 오후 4시가 되자 프로이센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 혁혁한 승리로 다부는 나중에 아우어슈테트 공작작위를 받았다. 프랑스 군대는 통틀어 약 1만 2,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프로이센과 작센의 군대는 약 2만 4,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2만 명 이상이 포로로 붙잡혔다. 나폴레옹은 러시아가 동맹국 지원에 나서기 전 6주 만에 프로이센을 완전히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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