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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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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는 연결된 한 가닥의 실을 얽으면서 짜는 편직(編織)에서 발전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갑골문 중에 누에[蠶]·실[絲]·뽕나무[桑]·비단[帛] 등의 상형문자가 보일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진한시대부터 남자는 농사일을 하고 여자는 직조한다(男耕女織)는 것이 보편화되어 그 생산량이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삼한시대부터 양잠과 베짜기가 성행했으며, 삼국시대부터는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고급직조물의 제작과 생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직조관청은 섬유원료와 직조방법에 따라 여러 관청으로 세분화되었는데, 마전(麻典)에서는 삼베를, 조하방(朝霞房)에서는 조하주나 조하금을, 기전에서는 능직금(綾織錦)의 일종인 기(綺)를, 금전에서는 각종 금을 짰다. 고려시대가 되면 직조는 잡직서(雜織暑)에서 전담했으며, 방직장·금장·나장(羅匠)·능장(綾匠)과 같이 고급직물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들은 액정서(掖庭暑)에 소속되어 있는 이원화된 체제였다. 조선시대에도 직조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방직장(紡織匠)과 능라장(綾羅匠)으로 구분되었으며 상의원·제용감·내자시·내섬시에 110명의 방직장이 있었고, 상의원에만 105명의 능라장이 있었다. 특히 직조는 직기에 의해 제한을 많이 받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직기의 부속품 중에서도 제작이 까다로웠던 바디를 만드는 성장(筬匠)이 같은 직조관청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것은 곧 고급직물을 제작하기 위해 선결조건인 직기의 국산화가 가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주목된다. 조선시대의 직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고려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면의 재배가 18세기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결과 이전 시기보다 직조품의 종류와 명칭이 다양해졌다.→ 염료와 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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