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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을 유지하는 요소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지방 정부들은 인구와 부에 있어서 비교적 평등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차이나는 점들이 지리적·수적인 면에서라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미국의 각 지역에는 큰 주와 작은 주가 골고루 섞여 있다. 캐나다에서는 가장 크고 부유한 2개의 주(州)가 민족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나머지 주들의 독립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서로 다른 크기와 상이한 종교를 배경으로 한 주(州)집단의 존재가 연방체제를 유지해왔다.

연방제도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나라에는 모두 이와 비슷한 분배를 이루고 있다.

연방제가 실패하는 주된 이유는 대부분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지방 정부들간에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9세기말의 독일연방제국에서는 프로이센이 절대적으로 우세하여 다른 나라들은 국가를 이끌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으며, 황제와 정부의 정책에 강력한 대안을 제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소련에서는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전체면적의 3/4과 전체인구의 3/5을 점유하고 있어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었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연방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은 크게 제한되었을 것이다. 성공적인 연방제도가 갖고 있는 또하나의 특징은 연방을 이루는 각 지방 정부 사이의 경계선의 영속성이다. 경계선이 변경될 수는 있지만, 그러한 변경은 관련 정부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경계선은 변경되지 않는다.

중요한 예로 연방을 구성하는 정부들이 독자적인 법률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헌법으로 보장해줌으로써 지방분권을 지탱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주의 법률체계는 모두 영국법(한 주의 경우에만 프랑스 법)에 직접 뿌리를 두고 있지만 각각 독특한 법률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연방법은 다만 50개 주의 법률체계를 한데 묶는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체계의 혼합은 연방법원에서도 사법행정을 상당히 지방분권적으로 유지하게 한다. 캐나다에는 영국의 관습법 체계와 유럽 대륙의 로마 법 체계가 병존하여 프랑스계 캐나다 문화의 존속에 기여한다. 연방제는 정부들이 각 지역의 특수한 필요성에 맞추어 연방법을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진정한 연방제도는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지방정부들이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헌법 수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어 왔다.

헌법은 공식적인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변경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방분권을 반영하는 분산된 다수의 결정만이 정치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연방을 구성하는 각 지방정부들이 이러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제도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연방제도만이 아니라 대의제정부에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연방을 구성하는 지방정부들의 연방의회에 대한 대의권을 보장해주는 것과 연방정치과정 내에 보장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지방분권을 강화시켜 준다.

미국과 스위스에서는 지방정부의 대(對)연방 참정권을 성문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캐나다와 중앙·남아메리카 같은 경우에도 연방구성체들이 일정한 참여권을 갖고 있지만, 불문헌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연방의 지방분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는 비(非)중앙집권적인 정당 체계일 것이다. 비중앙집권적 정당은 연방을 결성할 때 제정한 헌법규정에서 비롯되지만, 일단 결성이 되면 자생력을 갖고 스스로 권력분산 세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지방분권적인 정당이 채택할 수 있는 형태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미국의 양당체제에서 양(兩)당은 사실상 각 주의 정당들(이 정당들은 다시 별도로 구성된 지구당 조직의 지배를 받을 수 있음)이 제휴한 정당연합체이고, 4년에 1번씩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나 연방의회 선거 때만 전국적인 조직체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당의 재정과 의사결정은 각 주의 당 조직이나 전국적인 파당에 분산되어 있다.

반면에 캐나다에서는 정당의 책임이 요구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전국 수준에서의 집권과 권력유지를 위해 정당들이 훨씬 더 강한 응집력을 유지해야 한다. 캐나다의 정당들은 지역이나 주의 경계선을 따라 분산되어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은 지역기반을 일시적으로나마 전국 규모로 확대할 수 있는 정당이 된다. 정당체제가 발달하지 못한 중앙·남 아메리카의 연방국가들은 '카우디이스모'(강력한 토호들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것)로 불리는 방식을 통해 지방분권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나이지리아와 말레이시아에는 이런 형태의 지방분권이 뚜렷이 존재한다.

연방의 원칙을 유지하는 요소

연방제도에 존재하는 몇 가지 장치가 연방원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다음의 2가지이다. 연방체제를 유지하려면 국가와 그것을 구성하는 지방정부들은 제각기 실질적이고 독립적인 완전한 통치기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연방계약에 규정된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통치기구를 독자적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도 가져야 한다. 별개의 입법기관과 별개의 행정기관이 모두 필요하다. 연방체제의 모든 정부들이 계약에 따라 공적인 책임을 나누어 갖는 것이 연방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책임분담은 광의로 해석하면 정책결정과 재정 및 행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분담은 공식적일 수도 있고 비공식적일 수도 있다. 연방제도하에서는 이런 분담이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계약은 정부가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면서도 공동행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법률적인 장치로 이용된다. 공식협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연방제도의 정신은 계약에 따른 의무감을 고취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연방체제나 또는 연방원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정치체제일수록 안정되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연방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독특한 정치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반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서로 협조하고 자제하는 정치적 전통이다. 특히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정부들의 기본적인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지방정부가 많은 재량권을 갖고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연방제도는 최고의 기능을 발휘한다. 국내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력의 사용은 다른 형태의 정부보다 연방형태의 정부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불리하다.

연방제도는 많은 공직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유능한 인적 자원과 자유의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낭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물적 자원을 가진 사회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