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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다른 표기 언어 Meister Ecke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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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260경, 프랑켄 호흐하임
사망 1327/28, 프랑스 아비뇽
국적 독일

요약 훗날 개신교·낭만주의·관념론·실존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의 독일어 및 라틴어 설교 필사본들은 개인의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260년경 호흐하임에서 태어나 15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갔고 쾰른에서 공부했으며, 아마 스콜라 철학자 알베르트에게 배운 듯하다. 에크하르트는 30대 중반에 튀링겐의 주교대리(도미니코 수도회의 주요직위)를 맡았고, 이때를 전후해 파리에 있는 생자크 수도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독일어로 4권의 책을 썼다. 그 가운데 하나는 40세경에 자아 부정, 의지와 지성의 고귀함, 하느님에 대한 순종에 관해서 쓴 〈교훈의 대화〉이다.
1303년 도미니코 수도회의 작센 수도원 관구장이 되었고, 3년 뒤에는 보헤미아의 주교대리가 되었다. 특히 1314년부터 벌이기 시작한 주요활동은 라인 계곡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던 관상수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였다. 그뒤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수도원장이 되었다. 에크하르트의 철학은 그리스·신플라톤주의·아랍·스콜라 등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기는 하나 독특했다.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교리는 반드시 단순하고 개인적인 신비체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는 이 체험들에 여러 이름을 붙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추상 용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독일어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의 가르침은 훗날 개신교·낭만주의·관념론·실존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의 독일어 및 라틴어 설교 필사본들은 개인의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 과정을 그린다(→ 신비주의).

1260년경 호흐하임에서 태어나 15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갔고 쾰른에서 공부했으며, 아마 스콜라 철학자 알베르트에게 배운 듯하다. 그곳의 지적 배경은 도미니코 수도회의 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데, 당시는 아퀴나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에크하르트는 30대 중반에 튀링겐의 주교대리(도미니코 수도회의 주요직위)를 맡았고, 이때를 전후해 파리에 있는 생자크 수도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석사학위를 받은 곳도 파리였으며(1302), 이때부터 늘 석사(Meister) 에크하르트라고 불리었다.

그는 독일어로 4권의 책을 썼다(이 책들은 대개 '논문'이라고 함). 그 가운데 하나는 40세경에 자아 부정, 의지와 지성의 고귀함, 하느님에 대한 순종에 관해서 쓴 〈교훈의 대화 Talks of Instruction〉이다. 이 책을 쓸 무렵 신학적인 문제들을 놓고 벌어진 몇 차례의 유명한 논쟁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과 대립했다.

1303년 도미니코 수도회의 작센 수도원 관구장이 되었고, 3년 뒤에는 보헤미아의 주교대리가 되었다. 특히 1314년부터 벌이기 시작한 주요활동은 라인 계곡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던 관상수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였다. 그뒤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수도원장이 되었다.

생애 중반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독일어 저서는 헝가리의 여왕에게 헌정한 〈하느님의 위로에 관한 책 Book of Divine Consolation〉이다.

나머지 2권은 〈고귀한 인간 The Nobleman〉·〈초탈에 관해서 On Detachment〉이다. 완숙기에 접어든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인간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 4단계, 즉 다름·비슷함·합일·돌파를 설명한다. 처음에는 하느님이 전부이고 피조물은 무(無)이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인간영혼이 하느님 위에 있게 된다고 한다. 이 과정을 추진해나가는 힘이 초탈(Gelassenheit/Abgeschiedenheit)이다.

① 다름 : "모든 피조물은 철저히 무(無)이다. 작거나 하찮은 것이 아니라 순수한 무이다." 하느님이 본래부터 존재를 소유하는 반면에, 피조물은 존재를 소유하지 않고 다만 파생적으로 존재를 얻을 뿐이다.

하느님 밖에는 오직 무가 있다. '존재(사물의)는 하느님이다.' '고귀한 인간'은 초탈을 통해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 사물이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존재 속에는 하느님이 충만해 있음을 안다.

② 비슷함 : 그리하여 인간은 개별 사물들에서 초탈하여 보편적인 것(존재)으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의 형상을 지녔음을 발견한다. 그때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는 동화작용이 일어난다. 성부의 형상인 성자가 초탈한 인간영혼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너희는 너희 안에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안에 그분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

③ 합일 : 하느님과 인간영혼 사이의 합일에 관해서 에크하르트가 한 말들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쉽다. 그는 본질의 일치를 염두에 둔 적이 없고, 대신 하느님의 사역과 인간의 생성(becoming)을 하나로 여긴다.

하느님은 더이상 인간 바깥에 있지 않고 완전히 내면화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존재와 속성은 내 것이다. 예수는 인간 영혼의 성(城) 안으로 들어온다. 그때 영혼의 불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 영혼의 빛은 창조되지 않고 창조될 수도 없으며, 어떠한 중재도 없이 하느님을 소유한다. 인간영혼의 중심과 하느님의 중심이 하나가 된다."

④ 돌파 : 에크하르트는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은 '이유를 묻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 어느 것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하느님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사막, 즉 하느님보다 앞서는 자리로 이끌어간다. 에크하르트는 하느님이란 인간이 찾을 때만 하느님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하느님(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을 초월하는 만물의 기원을 '신성'이라 부른다.

"하느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처럼 구별된다." 인간영혼은 더이상 성자(the Son)가 아니며, 이제는 성부이다. 이로써 하느님은 하느님(인격적인)이 된다. "만일 내가 없다면 하느님은 하느님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탈은 하느님을 돌파함으로써 완성된다. 이 사상은 올바로 이해된다면 그리스도교적인 사상이다. 신앙인이 볼 때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그리스도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가르침은 그의 라틴어 저서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라틴어로 쓴 〈강론집 Sermons〉·〈성서 주석집 Commentaries on the Bible〉·〈단편들 Fragments〉은 스콜라 신학에 많이 기울어서 그 사상의 독창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에크하르트는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60세에 쾰른대학교 교수로 초빙받았다. 도미니코 수도회에 대해서 비우호적이던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 하인리히 폰 피르네부르크가 그 지역의 대주교였으며, 이제 막 큰 인기를 누리게 된 에크하르트는 대주교궁에서 처음 이단으로 정식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

고소장에 나열된 오류 목록에 대해서 라틴어로 〈변호 Defense〉를 써서 답변한 뒤 자기를 아비뇽 교황궁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교황궁에서 그의 저서들에서 추려낸 새 이론 체계를 증명해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단은 아니다.

실수란 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이단은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처럼 신비를 체험해본 일이 없는 재판관들 앞에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내가 가르친 것은 순수한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1329년 3월 27일 교황 요한 22세의 칙서는 두 목록에서 추려낸 28개의 이론들을 단죄했다. 이 칙서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미 죽은 것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 1327년 혹은 1328년쯤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죽기 전에 고소당한 오류들을 철회했다.

에크하르트의 철학은 그리스·신플라톤주의·아랍·스콜라 등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기는 하나 독특했다.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교리는 반드시 단순하고 개인적인 신비체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는 이 체험들에 여러 이름을 붙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추상 용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독일어 발전에 이바지했다. 1930년대에 일어난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몰염치하게도 그의 사상을 크게 변조함으로써 그를 자기들의 지적인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오늘날 일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과 선(禪)불교 신자들이 에크하르트에게 큰 관심을 쏟는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 포털

에르푸르트 교회 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 포털

ⓒ Michael Sander/wikipedia |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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