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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엽 이후에 탄생된 신생국들은 식민시대 이전의 전통적인 정치단위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 경제개발계획은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으며, 수송과 산업 및 교육에서의 발전이 대륙의 일부에서 이루어졌다. 이집트·세네갈과 같은 국가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지역 등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소규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하콩고에서 일어난 킴방구주의나 케냐의 마우마우 봉기 등이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이집트에 대한 군사점령은 1947년 종식되었다. 리비아는 1951년 독립을 획득했으며, 이집트와 영국의 공동통치를 받아오던 수단은 1956년 독립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2개의 프랑스 보호령, 즉 튀니지와 모로코는 1956년 독립했고, 스페인령 모로코는 같은 해 모로코의 나머지 부분과 재통일되었다.
프랑스는 1962년 알제리의 독립을 인정했다. 영국의 정책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겨 영국의 여러 식민지가 독립했다. 가나는 1957년에 독립했으며 뒤이어 1960년에는 나이지리아가, 1961, 1965년에는 시에라리온 및 감비아가 각각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1958년 프랑스 연방을 형성함으로써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프랑스 식민지 가운데 기니만이 1958년 독립의 기회를 잡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1960년 독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연방 내에 확산되어 어느 나라든지 독립을 원하면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결과 1962년 이후에는 프랑스령 소말릴란드만이 프랑스 통치하에 있었는데, 이 나라 또한 1977년 지부티 공화국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중앙 아프리카 및 동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 가운데 우간다가 1962년, 케냐가 1963년, 니아살란드(말라위로 국명을 바꿈)와 북부 로디지아(잠비아로 국명을 바꿈)가 1964년에 각각 독립을 이루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남부 로디지아의 백인정부가 영국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임을 선언했다. 남아프리카 형태를 따라 소수백인이 권력을 장악한 이 경찰국가는 1979~80년 흑인들이 다수 정치세력을 형성함에 따라 짐바브웨로 국명을 바꾸었다. 포르투갈 역시 기니·모잠비크·앙골라 등의 해외식민지를 포기하고, 1974~75년 이들 3개 국가의 독립을 인정했다. 기니는 기니비사우로 국명을 바꿨으며, 케이프베르데·상투메·프린시페 등의 섬은 1975년 자유를 얻었다.
1960년 독립하게 된 아이버리코스트는 1986년 코트디부아르로 국명을 바꿨으며,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속해 있던 다호메는 1960년 독립, 1975년에는 베냉으로 국명을 바꿨다. 어퍼볼타 또한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속한 국가였으나, 1960년 독립했고 1984년에는 부르키나파소로 이름을 바꿨다. 남아프리카 통치하에 있던 나미비아는 1990년 독립국이 되었다. 1991년 남아프리카에서는 지배세력인 소수 백인과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과의 갈등이 폭동의 양상으로 비화되었고, 결국에는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언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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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프리카의 민족주의와 독립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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