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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576년에 앙리 3세의 프로테스탄트 허용을 반대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동맹의 명분은 가톨릭의 수호였으나 왕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1584년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엔리케가 왕위계승권자가 되자 신성동맹은 다시 위력을 발휘하여 엔리케를 배제시키는 과정에서 스페인의 도움을 받았다.
앙리 3세는 어쩔 수 없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금지시키고 신성동맹을 와해시키려 기즈 공작을 암살하려 했으나 1589년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적극적 지원을 받는 신성동맹은 앙리 4세의 등극에 반대했다. 앙리 4세가 1593년 7월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반대의 주요원인을 없앤 후에야 신성동맹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이 단체는 앙리 3세의 프로테스탄트(위그노파) 허용 조처에 반대하기 위해 기즈 공작 3세인 로렌의 앙리 1세 주도로 1576년에 처음 조직되었다. 동맹 조직의 근본 취지는 가톨릭의 수호였으나 정치적인 이유, 그중에서도 특히 왕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의지도 상당히 작용했다. 앙리 3세는 이 가톨릭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이 단체의 해체를 명령했다(1577. 9). 1584년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나바라의 엔리케(뒤에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왕위계승권자가 되자 신성동맹은 다시 위력을 발휘했다. 동맹은 다른 왕위계승권자를 선정하고, 나바라의 엔리케를 배제시키는 과정에서 가톨릭 세력의 맹주인 스페인의 도움을 받았다. 신성동맹이 프랑스 전역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자 앙리 3세는 어쩔 수 없이 신성동맹을 회유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금지시켰다(1585. 6). 앙리 3세는 신성동맹이 프랑스의 상당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권위에 계속 도전하는 신성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기즈 공작을 암살하게 했다(1588. 12). 그러나 왕의 이러한 행동은 동맹을 깨뜨리기는커녕 오히려 1589년 8월, 그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적극적 지원을 받는 신성동맹은 앙리 4세의 등극에 반대했다. 앙리 4세가 1593년 7월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반대의 주요원인을 없앤 후 비로소 신성동맹의 세력은 서서히 약화되었다(종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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