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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세기말 프랑스의 마지막 종교전쟁(1587~89).
온건하지만 공정하지 못했던 프랑스 왕 앙리 3세와 극단적인 가톨릭 신봉자였던 기즈 공작 3세인 로렌의 앙리 1세, 그리고 위그노 지도자로서 나바라의 왕이자 프랑스 왕위계승권자인 부르봉가의 엔리케(뒤에 앙리 4세) 등 3명이 싸움의 당사자였다.
처음에 전쟁의 양상은 기즈 가문이 주도하는 가톨릭 세력인 신성동맹에 다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재정지원을 받은 나바라의 엔리케가 쿠트라 전투(1587)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 과정에서 앙리 3세의 총애를 받던 주아외즈 공작이 패해 전사했다. 한편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는 위그노와 합류하기 위해 프랑스로 진군했으나 기즈 공작을 당해내지 못하고 비모리와 오노에서 패배했다.
그후 기즈 공작은 앙리 3세의 명령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하게 파리로 입성했으며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은 앙리 3세는 샤르트르로 물러났다. 앙리 3세는 다시금 신성동맹 측이 강요한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했으며 또한 동맹칙령에 서명했다(1588). 이 칙령을 통해 앙리 3세는 기즈 공작을 프랑스 왕국의 부사령관으로 임명했으며 가톨릭 이외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고 선포했다. 수치심을 억누를 수 없던 앙리 3세는 1588년 겨울 기즈 공작과 기즈 가문의 추기경을 암살했으며 신성동맹에 가담한 여러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신성동맹 진영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해보였으며 동맹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마옌 공작은 파리에 입성해 앙리 3세를 상대로 개전을 선포했다. 이에 앙리 3세는 망설임 끝에 1589년 봄 사촌지간인 나바라의 엔리케에게 몸을 의탁했다. 독일인들이 재차 프랑스 북동부로 진입해왔으며 신성동맹 측은 이들 독일인이나 앙리 3세 및 엔리케의 군대를 물리치고 전진해나갈 수 없었다. 신성동맹 세력은 파리로 물러났으며 포위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국왕군이 신성동맹의 마지막 남은 성채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성직자를 가장한 자객에 의해 앙리 3세가 갑작스레 암살당했다. 앙리 3세는 죽기 직전 간신히 신하들에게 나바라의 엔리케를 자신의 후계자로 천거했으며 엔리케에게는 가톨릭 신자가 되라고 권고했다. 나바라의 엔리케는 앙리 4세로서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몇 년 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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