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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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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랄 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지역인 시베리아의 원주민 문화.

시베리아는 매우 다양한 기후조건과 자연서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크게 남쪽 경계의 건조 또는 반건조의 스텝, 중부의 광대한 삼림지대, 수많은 감조하천과 호수가 있는 북쪽 경계의 툰드라(영구동토층) 등 대략 3개의 주요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시베리아의 민족과 언어

야쿠트족(Yakut)

시베리아의 주요종족.

ⓒ Somogotto / wikipedia | CC BY-SA 4.0

17세기 중반에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유입되기 전 시베리아에는 소규모의 민족집단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문화는 위에서 언급한 세 지역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잘 적응한 것이었다. 남쪽에는 양과 말을 기르는 목축민들이 살았고, 삼림지대의 주민들은 사냥과 식량채집으로 생활했다. 북부 툰드라 지대의 주민들은 꽤 많은 수의 순록을 사육하여 생필품 대부분을 여기에서 얻었으며, 계절별로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했다. 툰드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야생 순록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유목민들보다 더 원시적인 단계의 종족들이 살았으며, 북극해와 오호츠크 해 연안에는 고래·해마·바다표범들을 사냥하는 해양 민족들이 살았다.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는 농업을 행하지 않았다. 현재도 농업은 남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주로 밀·호밀·귀리·해바라기 등이 재배된다. 반면에 가축사육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족인 야쿠트족은 소와 말을 사육하는 유목민인데, 이들의 존재는 동아시아의 유목민 중 일부가 시베리아로 유입되었음을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종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계통적으로 튀르크어족(야쿠트족, 시베리아타타르족 등)·만주퉁구스어족(에벤크족, 에벤족 등)·핀우고르어족(오스탸크족, 보굴족 등)·몽골어족(부랴트족)·고시베리아어족(코랴크족, 유카기르족, 길랴크족 등) 등에 속한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단위는 부족이 아니라 씨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씨족이 2~3개의 다른 부족에 속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부족에 속하는 주민 중에도 일부가 다른 부족의 문화권에 속하는 경우가 있었다.

시베리아 문화유형

사회조직

야쿠트족을 제외하면 시베리아의 부족들은 전부 소규모의 극히 원시적인 부족으로서 사회적인 조직도 엉성한 편이었다. 전체적인 친족 유형은 모계 혈통에서 발전한 부계 혈통이었다)(→ 모계제).

이러한 현상은 친족명칭에서만이 아니라 종교적 요소에서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샤먼은 남자이면서도 여자의 옷을 입는 등 어떤 측면에서는 양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순록 사육에 관한 것을 예외로 한다면 서구적인 의미의 소유 개념도 매우 약했다.

기술과 경제

시베리아인들의 기술과 예술은 주로 뿔, 상아, 나무, 조류·포유류·물고기의 껍질이나 가죽, 깃털을 이용한 것이었다. 철광은 남쪽의 부족들이나 러시아인과의 교역을 통해 얻었다. 화기가 도입되기 이전의 무기는 활과 화살, 매머드나 해마의 뿔로 만든 날카로운 창이었다. 많은 부족들이 나무껍질로 배를 만든 뒤 자연재료를 이용해서 복잡한 모양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요리용 그릇은 쇠를 이용해 만들거나 러시아에서 들여왔으며, 옷은 동물의 가죽으로 지어 정교하게 장식했다.

일반적으로 가옥은 이동식으로서 기둥과 가죽을 이용해 짓거나 나뭇가지와 잔디를 한 겹 깔고 지었다. 시베리아 지역의 특이한 가옥인 발라간(balagan)은 일종의 썰매 위에 지어져 순록이 끌고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1581년 카자크 기병의 원정을 기점으로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원주민의 경제생활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소형 화기, 금속 덫 등이 도입되자 사냥과 어로가 더욱 편리해졌다. 원주민들은 모피교역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당시 유럽의 영향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종교

시베리아인들의 종교는 그들의 경제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종교의 중심은 자연세계와 초자연의 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이었다. 샤먼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했고, 경제활동에 관한 상담을 했으며,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 집단을 보호해주었다. 샤먼이 행하는 의식은 시·노래·복화술·주술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샤먼의 완벽한 기술에 의해 한층 더 빛났다.

예술

시베리아의 민속에는 기원 신화, 주술가, 속담, 초보적인 서사시 등이 포함된다. 러시아의 문화적 영향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악기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샤먼이 사용하거나 춤의 반주를 할 때 쓰던 북(정확히 말하면 탬버린) 이외에는 나무 또는 금속제의 하프와 뿔로 된 리드 파이프가 있을 뿐이었다.

시베리아의 남쪽 경계인 알타이 고지와 바이칼 호 부근에 정착해 사는 러시아인들로부터 농업을 도입하고, 러시아 정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 러시아가 미친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범들을 오지로 유형 보내던 러시아 정부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1891~1905) 이후였다. 이외에도 시베리아의 일부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정착해 살던 러시아 농민들이 있었다. 시비랴크(Sibiryaks)라고 불리는 이들은 유럽권 러시아 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의 시베리아인

1917년 혁명 이후 소련 정부는 시베리아 지역의 포괄적인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목표로 했으나, 혁명 후 약 15년간 시베리아 개발은 사실상 조사와 계획 수립을 하는 데 그쳤다.

1928~32년의 제1차 5개년계획 기간중에 산업이 상당히 발전했으나 주로 쿠즈네츠크 탄전과 시베리아 철도 연변에 집중되었다. 교육과 공중보건 분야에서도 상당한 진보가 있었지만 이러한 조치는 유목생활방식을 고수하던 지역 주민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레닌그라드 동방언어연구소(1926 설립) 같은 기관들이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며 지역 내의 의사, 준의료 인력, 교사들을 양성하는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초에는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의 언어로 씌어진 초등교과서가 발행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1930년대에 농업이 집단화되었는데도, 시베리아의 사냥·어로·순록사육 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집단화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원시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친족집단 중심의 전통적인 소규모 생산단위가 이때까지 온존하고 있었다.

시베리아 종족들에 대한 소련의 정책은 소규모의 원시적인 종족들을 복합적인 현대 산업사회에 통합시키는 독특한 실험을 의미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베리아 주민들은 대부분 유럽권 러시아에서 들여온 인력과 기구를 이용한 유례없는 산업화를 겪고 있다. 1985년 조사에 따르면 카자흐를 제외한 시베리아의 총인구는 3,973만 6,000명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지역은 인구비율이 낮으며 주로 서부와 남부에 주민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인구의 비율은 50%가 넘으며 주민 중에는 러시아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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