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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

다른 표기 언어 徐居正 동의어 문충, 文忠, 사가정, 四佳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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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20(세종 2)
사망 1488(성종 19)
국적 조선, 한국
본관 달성(達城, 지금의 대구광역시)
시호 문충(文忠)
사가정(四佳亭)

요약 조선 세종 때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한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강중, 호는 사가정이며 세종 26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문종 1년에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세조 3년에 문신정시에 장원급제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해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뤘던 목릉성세의 디딤돌을 이뤘다.

본관은 달성.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권근(權近)의 외손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 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7년(세조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지냈다.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서거정

서거정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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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저술을 남겨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루었던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디딤돌을 이루었다. 〈경국대전〉·〈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서로는 〈역대연표 歷代年表〉, 객관적 비평태도와 주체적 비평안(批評眼)을 확립하여 후대의 시화(詩話)에 큰 영향을 끼친 〈동인시화〉, 간추린 역사·제도·풍속 등을 서술한 〈필원잡기 筆苑雜記〉,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관인의 부려호방(富麗豪放)한 시문이 다수 실린 〈사가집 四佳集〉 등이 있다.

명나라 사신 기순(祁順)과의 시 대결에서 우수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를 통한 〈황화집 皇華集〉의 편찬으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그의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시호는 문충이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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