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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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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현재 영토인 한반도와 과거 영토였던 만주지방에서는 지방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BC 70000년 이전에 구석기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후 중석기문화(BC 10000년 이전에 시작)·신석기문화(BC 6000년 이전에 시작)·청동기문화(BC 2000년 이전에 시작)·철기문화(BC 700년 이전에 시작)를 거쳐오는 동안, 조상들도 의식주 해결 및 치료 등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 과정에서 주변의 식물과 동물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고 응용해왔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19세기까지 생물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서 연구되고 전승되어온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고고학상의 자료, 농업·의학·어업·식품에 관한 고문헌, 사서(史書) 등에 산재하는 생물학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생물학사적인 고찰을 해야 하지만 중세(고려시대) 이전의 남아 있는 관련 고문헌은 거의 없다.

예로부터 한국의 문화는 대륙(주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발전했는데, 농업과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생물학(주로 분류학) 분야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고조선시대에 유입된 본초학(의학의 일부)이었다. 중세 말기부터 근세(1392~1863)에 들어와서 자주적으로 향약(鄕藥)을 연구,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1236경), 조선시대의 〈향약채취월령 鄕藥採取月令〉(1431)·〈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1433)·〈동의보감 東醫寶鑑〉(1613) 등이 발간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동물이 연구되었다. 해부학은 동양의학이 실질적으로 해부를 수반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발전이 거의 없었고, 생리작용의 설명은 일관되게 음양오행설에 의존해왔다. 한편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1470~94)에 실린 팔도 각 고을의 토산품은 그시대 생물의 지리적 분포를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18세기에 실학이 진흥되면서 많은 박물서와 경제서가 발간되었는데, 생물학(주로 분류학)과도 관계가 있다.

대표적인 것들로 이수광의 〈지봉유설 芝峰類說〉(1633), 홍만선의 〈산림경제 山林經濟〉(1715경), 정약전의 〈자산어보 玆産魚譜〉(1814), 김려의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1803 탈고, 1882 출간),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1834~45)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자산어보〉는 저자가 흑산도에서 다년간 해양생물을 직접 관찰하면서 분류·기재한 최초의 해양동식물조사 보고서이다.

산림경제(山林經濟)

ⓒ Hong Mannseok/wikipedia | Public Domain

19세기 중엽 유럽인들이 한국의 식물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 발표한 예들이 있었으나, 유럽식 생물학은 조선 말기인 1896~1910년에 각급 학교의 교육을 통해서 도입되었다.

한편 학교 교육과는 별도로 1880년대에는 일본을 통하여, 1900~05년에는 중국을 통하여 진화사상이 한국에 도입되었다. 1896~1910년에는 유럽인들이 한국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주역을 담당했고, 일본인들도 이런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의 산림자원과 수산자원의 조사도 시작했다. 1910~45년에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생물학 및 그 관련 분야의 교육과 연구의 주역을 담당했지만, 고등교육 기관에는 생물학 관련 전공학과가 없었고, 단지 농학·임학·수산학·의학 관련 전문학교나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교과과정에 약간의 생물학 관계 교과목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상 한국인 생물학자들의 대부분은 수원고등농림학교(1922 창립) 출신이었다. 이의경(또는 이미륵)은 플라나리아의 재생에 대한 연구로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1928년 이학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그외에 1910~45년에 생물학과·식물학과·동물학과를 졸업한 사람은 일본에서 유학한 6명뿐이었다.

1923년경 일본인들이 주동하여 조선박물학회(朝鮮博物學會)를 창립하고 〈조선박물학회잡지〉(1924~44)를 제40호까지 발간했다.

여기에는 분류학 관계 논문이 비교적 많이 실렸다. 조선총독부는 산림·수산 자원을 계속 조사하여 1945년까지 한국의 식물상과, 척추동물 및 일부 무척추동물(연체동물, 갑각류·십각류, 곤충 등)의 동물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한편 조선의학회(朝鮮醫學會:1910 창립)가 발행한 〈조선의학회잡지〉와 기타 의학 분야 학술잡지 등에는 임상 논문 이외에도 생리학·형태학·기생충학에 관한 것들도 실려 생물학 발전에 기여했다.

이런 사이에도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와 같은 한국인 식물학자들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 朝鮮植物鄕名集〉을 발간했고, 동물분류학에서 조복성(곤충)·원홍구(조류)·석주명(나비류)·백갑용(거미류), 동물세포학에서 강영선의 논문이 나왔다.

1945년 8·15해방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생물학 분야에서도 각자의 길을 걸어왔으므로 여기서는 남한에서의 발전만을 다루도록 한다. 1945년 12월 조선생물학회가 창립되고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최초로 생물학과가 신설되었으나 1960년경까지는 8·15해방 후의 사회혼란, 6·25전쟁과 그 후유증, 산업의 후진성, 과학 및 기술의 낙후성, 학자의 부족 등으로 생물학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신설 생물학과의 증가, 유학생의 증가, 생물학 관련학회의 창설과 학회지의 창간 등으로 점차 생물학 발전의 기틀이 잡혀 조선생물학회는 1951년 대한생물학회로 개칭되었고, 1956년 〈생물학회보〉를 창간했다. 이 학회는 1957년 한국식물학회와 한국동물학회로 분리되어 한국생물과학협회를 구성했다. 1959년에 한국미생물학회가 창립되어 이 협회 산하에 들어갔다.

문교부가 1959년부터 〈한국동식물도감〉을 발행하도록 함에 따라 분류학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 후 국가가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자 1967년 과학기술진흥법의 제정과 과학기술처를 발족시켰으며, 과학교육진흥법도 제정했다. 1976년에는 한국과학재단법이 마침내 제정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시책들이 기술적 측면에 너무 치중되어 왔으나, 점차 기초과학을 중요시 여기게 되어 1977년 서울대학교에는 자연과학종합연구소가 설치되었고, 다른 여러 대학교에도 기초과학연구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에는 유전공학육성법이, 1989년에는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이 제정되었다. 그결과 기초과학의 발전을 위한 교육·연구·시설에 대한 투자가 점차 증가하게 되었으며, 생물학 분야도 나름대로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까지는 선진국에서 이미 많이 발전된 주요분야들(분류학·형태학·생리학·발생학·유전학·세포생물학·생태학·미생물학·분자생물학 등)이 거의 모두 부진 상태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발전이 점점 가속화되었다.

발전하는 양상은 생물학 관련 학과의 증설과 관련 학회의 창립에서 엿볼 수 있다. 1992년 2월 현재 관련학과의 수는 생물학과 66, 미생물학과 20, 분자생물학과 6을 포함해 모두 92개 학과이며, 1학년 모집정원은 4,045명이다. 이밖에도 생물학의 응용학과로서 농생물학과·유전공학과 등의 72개 학과가 11개 대학교에 있으며 1학년 모집정원은 2,664명이다.

학회는 위에서 서술한 3개 학회 이외에 한국해양학회(1966 창립)·한국육수학회(1967 창립)·한국식물분류학회(1967 창립)·한국전자현미경학회(1967 창립)·한국곤충학회(1970 창립)·한국균학회(1972 창립)·한국생태학회(1976 창립)·한국유전학회(1978 창립)·한국동물분류학회(1984 창립)·한국분자생물학회(1989 창립) 등이 창립되어 각각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이 학술지들의 질은 연구 인력의 증가, 연구 분야의 다양화, 그리고 연구 여건의 향상으로 점점 향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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