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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숭배

다른 표기 언어 山岳崇拜 동의어 산악신앙, 山岳信仰

요약 산악을 신성시하는 자연신앙행위.

예로부터 산악은 인간에게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산악은 구름을 뚫고 하늘의 신비한 영역에 닿아 있으므로 산은 천신이나 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산정은 세속으로부터 분리된 신비로운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이 많은 한국은 산악신앙이 성행했다. 신선신앙은 물론이고 민속이나 무속에 관련된 많은 민간신앙들이 산악과 직접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이 태백산정에 하강했고 죽어서는 구월산 산신이 되었다는 것도 한국 민족이 산악을 경건하게 여기는 좋은 예이다.

유형

산에 관한 신앙현상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보면 첫째, 산의 인격화 현상을 볼 수 있다.

물론 산의 인격화가 이루어진 다음 단계에서는 산신(山神), 즉 예배받는 인격화된 신이라는 관념이 형성된다. 둘째, 하늘에서 뭇 신과 신선들이 산정을 통해 내려온다는 신앙이다. 즉 신들이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거주처나 인간세상을 방문하는 기점이 된다는 관념이다. 특히 높은 산은 신이나 여러 신선들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하늘에서 천신이 직접 산을 통해 내려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단군신화나 김수로왕의 신화에서도 확인된다.

그에 의하면 천신이 태백산정의 신단수나 구지(龜旨)라는 산봉우리에 내려와 임금이 되었다고 한다. 셋째, 산은 사령(死靈)들이 사는 곳이라고 믿는다. 죽은 사람들이 가는 저승은 바로 산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죽은 사람을 산에 묻는 것도 그러한 관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죽은 혼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죽어서 산신이 되는 예는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제석천(帝釋天)의 아들로 신라에 태어났는데 사후에 다시 산신이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 대표적 예이다. 넷째, 산을 성스럽게 여긴다. 어느 특정한 산을 특히 신성시하는 경우가 있다. 마니산·백두산·한라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므로 민족설화가 얽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다. 풍수지리설과 관련되거나 형상이 기묘하여 종교적으로 영산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중국의 곤륜산은 도교의 성산이고 인도의 수미산은 불교의 성산이다. 한국에서는 개성의 덕물산, 충청남도의 계룡산·모악산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산은 많은 수련자들이 종교수련을 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산 자체가 신성시되어 산제(山祭)는 물론 천제(天祭)를 지내기에 알맞는 곳이기도 하다. 산정에 신들에게 제사하는 제단이나 신사가 세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인공으로 산을 만들고 단을 쌓아 신사(神祀)하는 풍습도 볼 수 있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곳을 성황당이라 하여 신성한 산으로 간주하여 신성시한다. 또한 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각종 신들을 위한 제단·사당·신당을 산기슭이나 산 중턱에 세우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다섯째, 한국에서 보이는 산제사의 종류를 보면 산신제(山神祭) 외에 대표적인 것이 기우제(祈雨祭)와 호국제(護國祭)가 있다.

비와 관련되는 기우제는 대개 산정의 천지(天池)에서 지냈다. 호국영웅의 설화와 관련된 제사도 많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은 날 때부터 하늘의 뛰어난 정기를 부여받고 태어났다. 18세에 화랑이 되어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치려고 밤낮으로 골몰하여 수련을 쌓고 있었다.

이때 낭도 중에 백석(白石)이라는 첩자가 끼어 있어 김유신을 유인해가는데 홀연히 호국신이 미녀로 변신하여 나타나 구원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나타난 나림(奈林)은 지금의 경주 낭산신(狼山神)이고, 골화(骨火)는 지금의 영천 금강산신(金剛山神)이며, 혈례(穴禮)는 지금의 오산신을 말하고 있으므로 모두 산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산과 여신이 결합한 여산신(女山神)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속에는 일반적으로 산신의 모습이 백발도인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수렵사회에서의 산신은 본래 여성이었으나 부권사상이 전래되면서 남성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한국 산들의 명칭을 훑어보면 남성보다 여성이나 모성의 명칭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모산·모악산·불모산·오모산 등과 같이 여성명칭을 띠는 산일수록 더욱 종교적이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산신들은 이미 불교적 요소들과 혼용되어 있지만 산신이 여성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진평왕 때 지혜(智慧)라는 비구니가 불당을 수리하려다가 힘이 미치지 못하자 서악(西岳)인 선도산(仙桃山)의 여산신이 선녀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불당을 짓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한국적 특징

한국의 산악신앙은 산 자체의 인격화, 신의 거처지, 사령이 사는 곳, 산신당, 산신제, 선신 등의 관념이 복합되어 있다. 산신에 대한 제사장소인 신단에 대해 살펴보면, 이 신단에는 신단과 신수의 합성어인 신단수가 있다. 이는 본래 대개가 산정 위에 있었고, 그것이 세계의 중심인 우주목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신단은 누석·신수·당집의 신앙도 기본적으로 천신·산신에 대한 제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누석단-신수-당집'의 형태로 각각 전문화되고 농경 수호신들과 결합되어 비교적 최근까지 전수되어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훌륭한 영웅과 치자(治者)는 산신의 정기를 받아 산신이 화신하거나 산신의 작용으로 인간세계에 태어난 것이고, 이들이 죽으면 산신이 되어 국가를 보호해준다는 관념이 나타나는데, 유난히 국난을 많이 겪었던 한국으로서는 산신이 나라와 부락의 수호신이 되었다.

고산의 산신신앙과 함께 인공적으로 돌무더기를 만들고 나무를 세워 신수로 삼는 것은 종교현상의 보편적 퇴화와 유치화 현상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초월적인 천신은 뒤로 물러나 감추어지고, 천신의 구체화로서 표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산신, 그 산신에 제사지내는 신단수, 그 민간형태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는 '누석단-신수-당집'의 유형이 대단히 광범위한 형태로 한국인의 종교생활을 지배해왔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산신의 사자로서 곰과 범의 역할이다. 곰과 범은 산신 자체의 구현자, 대리자 또는 사자로 나타나고 있다. 산신으로 나타나는 노인 옆에 호랑이가 묘사되고 있는 모습은 한국 민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호랑이가 신이었다는 기록은 이미 〈삼국지〉 위지 동이전 제13조 예조에서 나타난다. 호랑이와 함께 동격으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도 이에 대한 뒷받침이 호랑이만큼 풍부하지는 않으나 산신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신이었다는 관념은 〈삼국유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호랑이가 산신의 사자이거나 산신으로 나타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민간에서는 호랑이를 산신할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악숭배 사상의 전개

역사적으로 보면, 백제와 신라에서는 산신에게 제사 지내기를 좋아했다는 〈위서 魏書〉의 기록이 있다. 또 국왕이나 영웅은 죽어서 산신이 된다는 믿음은 단군이 아사달의 산신이 되고, 탈해(脫解)가 동악산신 즉 토함산 산신이 되었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이미 산악숭배신앙이 널리 퍼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에서는 오악신(五岳山)에 대해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중국의 5악사상을 연상하게 한다. 즉 동토함산·남지리산·서계룡산·북태백산·중부악산 또는 팔공산을 오악신군이라 하여 제사 지냈다. 고려시대에는 산신과 성황신의 제의에 무당이 관여한 기록이 있다. 〈신당서 新唐書〉의 "호사산신(好祀山神)하고 선사신지급산곡지신(先祀神祗及山谷之神)"이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시대 산신신앙을 이어받아 산신을 숭배하고 제사지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서는 4대산으로 덕적산·백악산·송악산·목멱산의 산신에 봄·가을로 제사 지냈으며, 무녀에 의해 거행되었다. 송악산은 거란이 침공했을 때 밤새 소나무가 수만 명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떠들어 거란은 군병이 많은 줄 알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고 하여 이곳에 사당을 짓고 제사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명산에는 산신이 좌정해 있는 것으로 믿고 산신을 위로·제사함으로써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산신은 적게는 한 마을의 진산(鎭山)이지만, 대산은 국가의 운명과 관계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원제사가 왕실에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거행되었다. 기은제는 주로 산천에서 행했으며 덕물산·백악산·감악산·개성대정·송악산·삼각산 등에 제단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감악산·백악산·삼각산을 호국백(護國白)으로 봉하여 제사지냈다. 산천제에 관해서는 기우제에서도 언급했으나 백악산·송악산·삼각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명산들에는 산신이 있고 이 산신에 제사 지내는 산신제가 마을마다 도처에서 거행되어왔다.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이 있는 것을 비롯하여 많은 산악신에 제사 지내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다. 광무원년(光武元年)에는 금강산·묘향산·오대산·구월산·장백산을 추가하여 오악·오진의 신에 제사 지냈다. 개성의 덕물산과 나주의 금성산은 남신이 좌정하고 있어 제사 때에 사민(祀民)들은 민간에서 처녀를 구해다가 산신에게 공헌하는 풍습이 있었다. 산신과 관련되어 암석신(岩石神)의 기록이 전하는데 암석에도 신령(神靈)이 있다고 믿는 암석신앙이 토착화했다. 전국 도처에 있는 기자암(祈子岩)은 부녀자가 암석에다 빌면 잉태하게 된다는 암석 구사(求嗣)의 민속에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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