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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근대사회에서 국가적인 규모의 제사에 관한 절차와 의식.

유교가 국가의 중요한 정치이념으로 채택되었던 조선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문헌에 나타나는 사전으로는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舞天) 등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삼국시대에 국가적인 의례로 변화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백제는 천(天)이나 산천(山川)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제후국인 신라는 천자국만이 행하는 제천의식을 행하지 않았다. 이는 〈삼국사기〉의 지은이가 유교적 명분의식을 투영하여 삼국 중 신라를 정통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원시 이래 전통적인 제천의식은 물론 국조(國祖)의 천강신화(天降神話)를 가진 신라사회가 제천의식의 전통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편 삼국 중에서 보다 소상한 기록이 남아 있는 신라의 사전을 살펴보면, 시조묘(始祖廟)·신궁(神宮)·오묘제(五廟制)로 바뀌는 조묘제(祖廟制)의 개정과정을 통해서 신라사회 발전의 단면을 알 수 있다. 즉 골품을 형성했던 각 족(族)의 독자성과 각 족 내에서의 가(家)의 분립적 경향이 이러한 묘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체제정비를 유교의 정치사상과 예적 질서를 바탕으로 행하게 되므로 유교에서 말하는 사전(祀典)을 본격적으로 수용했다.

그것은 대체로 체제정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성종대에 이르러 가능해졌다. 국가적인 제사로서의 사전에 관한 것은 〈고려사〉 예지 길례조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고려의 오례는 〈주례〉에 근거하는데, 중국의 당·송의 제도를 활용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그 내용을 제사의 규모에 따라 대사·중사·소사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적인 제사의 최대규모인 대사(大祀)는 원구(圓丘)·방택(方澤)·사직(社稷)·태묘(太廟)로 구성되었고, 중사(中祀)는 적전(籍田)·선잠(先蠶)·문선왕묘(文宣王廟)로 구성되었으며, 소사(小祀)는 풍사우사뇌신영성(風師雨師雷神靈星)·마조(馬祖)·선목마사마보(先牧馬社馬步)·사한(司寒)·제주현문선왕묘(諸州縣文宣王廟)·대부사서인제례(大夫士庶人諸禮)와 그밖에 잡사(雜祀)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유교의 명분질서를 중요시 하는 예론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자국만이 행한다는 원구제와 같은 제천의식을 실시했다. 고려의 원구제는 어느 일방(一方)의 천신이 아니라, 오방(五方)의 천신인 청제(靑帝)·적제(赤帝)·황제(黃帝)·백제(白帝)·흑제(黑帝) 모두가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호천상제(昊天上帝)를 아울러 치제(致祭)했다. 고려 일대의 제천례는 천자국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국가적인 규모의 사전은 보다 더 체계적으로 이해·수용되었다.

이것은 고려 말기 신흥세력들이 유교적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조선을 창업했을 뿐 아니라, 유교의 명분질서를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종래의 유교를 철학화·내면화한 주자성리학이 수용되고 있었으므로 불교를 이론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주자성리학은 유교의 명분질서를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논리를 전제하게 되므로 천자와 제후, 군자와 소인, 그리고 화(華)와 이(夷)를 차별의 논리로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유교의 명분질서는 고려시대와 달리 다분히 주자성리학에서 말하는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변계량과 같이 유학자이면서도 제천의식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유교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정한 이상 유교의 명분질서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시대 사전으로 유교의 명분질서를 보여주는 것은 〈국조오례의〉의 완성을 통하여 나타난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대사에는 사직·종묘·영녕전이 있고, 중사에는 풍운뇌우·악해독·선농·선잠·우사·문선왕·역대시조가 있었으며, 소사에는 영성·노인성·마조·각산대천·사한·선목·마사·마보·마제·영제·포제 등이 있었다.

〈국조오례의〉에서 고려시대와 다른 점은 원구제의 제천의식이 빠져 있어 제후국으로서의 명분질서에 충실하려는 점이 엿보인다.

또한 〈국조오례의〉는 중사·소사 편제의 재조정이 있는데, 고려시대 소사에 있던 풍운·뇌우와 제주현문선왕묘를 중사에 넣고, 고려시대에 제외된 산천(山川)의 악해독과 조선단군·기자·고려시조를 중사에 포함시켰다. 이는 모두 유교이념을 근거로 해서 이에 접근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다.→ 대사, 소사,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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