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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독일 북부 니더작센 주, 오커 강 연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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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43,829명 (2023년 추계) |
면적 | 192.18㎢ |
언어 | 독일어 |
대륙 | 유럽 |
국가 | 독일 |
요약 독일 북부 니더작센 주 남동부의 행정구. 동쪽으로 작센안할트 주, 남쪽으로 헤센 주, 서쪽으로 하노버 구, 북서쪽으로 뤼네베르크 구와 접한다. 하르츠 산맥이 독일 중앙고원의 북쪽 가장자리로부터 이 구의 중심부로 밀고 들어와 있다.
동쪽으로 작센안할트 주, 남쪽으로 헤센 주, 서쪽으로 하노버 구, 북서쪽으로 뤼네베르크 구와 접한다. 이전의 독일 주였던 하노버와 역사상에 있던 작센 지역 일부들로 이루어졌다.
현재의 경계선은 1977년 행정조직개편에 따라 그전의 브라운슈바이크 구, 힐데스하임 구의 남동부, 뤼네베르크 구의 일부 등이 통합되어 설정되었다. 이 행정구의 이름은 이 구의 최대도시이자 행정소재지인 브라운슈바이크 시로부터 따온 것이다.
브라운 슈바이크의 지리
하르츠 산맥이 독일 중앙고원의 북쪽 가장자리로부터 이 구의 중심부로 밀고 들어와 있다. 점토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하르츠 산맥의 북서부로, 고도가 높은 오버하르츠 산맥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오버하르츠 산맥을 흐르는 하천들은 좁고 경사진 골짜기들을 형성하는데, 북독일평원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이들 중 많은 하천에 댐이 건설되어 있다.
운터하르츠 산맥에서는 농업이 지배적이나, 오버하르츠 산맥에는 가파른 지형과 습랭한 기후 때문에 빽빽한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숲들이 형성되어 있다.
경제는 임업·경공업·관광업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때 초원의 주민들이 마녀들의 소굴로 여겨 두려워했던 오버하르츠 산맥은 오늘날 아름다운 경관의 건강도장, 여름 휴양지, 겨울 스포츠 중심지가 되어 많은 행락객이 찾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들로 바트하르츠부르크·하넨클레·브라운라게 등을 들 수 있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제국도시인 고슬라어가 오버하르츠 산맥의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오버하르츠 산맥은 북쪽·서쪽·남서쪽으로 니더작센 구릉지대에 둘러싸여 있다. 남쪽 고원의 수평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사암과 석회암들을, 넓은 라이네 강 수로와 베저 강의 좁고 꼬불꼬불한 골짜기가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중요한 문화 중심지인 괴팅겐이 라이네 강 골짜기의 황토로 덮인 비옥한 농업지역에 있다. 괴팅겐 외곽지역에서는 정밀 엔지니어링과 광학·전기 공업이 발달했다. 농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라이네 산악지대는 니더작센 구릉지대의 일부이며, 하르츠 산맥으로부터 서쪽을 향해 베저 산악지대와 합쳐지는 하노버까지 뻗어 있다.
라이네 산악지대의 벼랑은 북쪽으로도 계속되지만, 황토로 덮인 비옥한 평야지대인 노르트하르츠 전방지에서 점차 확 트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 전방지는 독일의 사탕무 주생산지 중의 하나인데, 여기서 생산되는 사탕무는 대규모의 소 사육업을 뒷받침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밀과 야채가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주요 공업도시 브라운슈바이크·잘츠기터·볼프스부르크 등이 미텔란트 운하를 따라 있는 전방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들에서는 자동차가 주요 생산품이다. 잘츠기터와 파이네 근처에서는 철광석이 채광되며, 북부의 뤼네부르크 황무지 남서쪽에서는 유전이 개발되고 있다.
인구밀도는 오버하르츠 산맥의 20명/㎢ 이하에서 노르트하르츠 전방지에서의 500명/㎢ 이상까지 다양하다. 주민들은 오버작센족·니더작센족·프랑크족·튀링겐족의 후손들이다.
고지 독일어와 저지 독일어 사용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이 하르츠 산맥을 통과한다. 주민의 3/4 이상이 개신교도들이다. 불규칙하며 빽빽한 농촌 취락형태가 지배적이며, 분산된 농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르츠 산맥의 좁은 골짜기에서는 직선으로 난 외길만이 있는 촌락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지방 농가는 이 지역의 삼림자원을 활용하여 프랑켄의 목골조 주택을 본뜬 형태이다. 이 구의 고등교육은 괴팅겐·브라운슈바이크·클라우슈탈첼러펠트 대학교 등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브라운 슈바이크의 역사
벨프가 소유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이 1235년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엘베 강 하류와 베저 강 하류 사이의 지역에 설립되어, 벨프가의 시조인 사자공 하인리히의 손자 오토에게 주어졌다.
13세기말부터 이 영토는 벨프가의 여러 가계 사이에서 분할되기 시작하여, 수세기 동안 수없이 분할·합병·재분할되었다. 벨프 가계의 하나인 카렌베르크괴팅겐(하노버)가가 혼인으로 영국 왕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17세기에 주도세력이 되었고, 1714년에는 하노버 왕가로서 영국과 아일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영토의 끊임없는 분할과 군주들간의 다툼 때문에 이곳은 독일 정치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후 브란덴부르크와 그 후신인 프로이센 세력에 완전히 가려지기 시작했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베스트팔렌 왕국에 합쳐졌으나 1814년 다시 합법적 통치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작에게 반환되었는데, 그는 1815년 카트르브라스에서 패배했다.
그의 아들 카를 2세가 미성년인 동안 영국의 섭정궁인 게오르크가 이 공작령을 통치했다. 성년이 된 카를 공작은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1830년 혁명적 대격변 때 공국을 영원히 떠나야만 했다. 1831년에 공식적인 카를의 계승자로 선포된 그의 아우 빌헬름은 능력있고 인기있는 통치자였다.
1866년에 이르러 계승문제가 심각해졌다. 빌헬름은 미혼이었고 다음 후계자는 하노버의 전(前)왕 게오르크였는데, 그의 영토는 이미 프로이센에 합병된 상태였다. 프로이센의 반대 때문에 빌헬름 공은 브라운슈바이크 의회의 동의를 얻어 그의 사후 후계자가 계승할 수 없을 경우 정부를 이어받을 섭정단회의를 마련했다.
1884년 10월 18일 빌헬름이 사망하자 컴벌랜드 공작이자 하노버의 게오르크 5세의 아들인 에른스트가 자신의 왕위계승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하노버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회의는 그의 즉위가 제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섭정단회의에서는 그의 요구를 무시하고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섭정 황태자를 선출했다.
1906년 알브레히트의 사후, 브라운슈바이크 의회는 1907년 5월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섭정인 요한 알브레히트 공작을 후계자로 선출했다. 이 계승문제는 1913년 컴벌랜드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황태자가 정식으로 하노버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인정되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유일한 딸인 빅토리아 루트비히 공주와 5월 24일 결혼하면서 해결되었다. 1919년 이후 이 공작령은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자치국이 되었다.
나치 시대 동안 브라운슈바이크의 면적은 상당히 축소되었다. 1945년 영국 군정하에서 주로서 재성립되었으나, 1945년 11월 새로운 니더작센 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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