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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프 왕조

다른 표기 언어 Welf dynasty

요약 게르만족 출신의 통치자와 귀족으로 이루어진 왕조.
(이). Guelpho. (영). Guelf/Guelph.

중세 이탈리아와 중부 유럽에서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주요경쟁자였으며 나중에 하노버 벨프 왕가를 포함하게 되었는데 조지 1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하노버 벨프 왕가는 영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대(大)벨프 왕가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벨프라는 이름은 카롤링거 시대에 이미 세례명으로 꽤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왕가의 조상으로 분명히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인물은 9세기초 바이에른에 영지를 갖고 있던 벨프 백작이다. 이 백작의 딸인 유디트와 에마는 각각 프랑크인 황제 경건왕 루트비히 1세와 게르만족 출신의 동프랑크 왕 루트비히와 결혼했다. 남아 있는 증거 자료를 잘 분석하면 부르군트 벨프 왕가와 슈바벤 벨프 왕가의 기원은 유디트와 에마의 두 조카, 즉 콘라트(876경 죽음)와 벨프 1세(876 이전 죽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콘라트의 아들 루돌프(911/912 죽음)는 888년에 부르군트 왕국의 왕이 되었고, 이 왕국은 1032년까지 그의 자손들이 다스렸다. 벨프 1세의 5대손인 듯한 벨프 2세(1030 죽음)는 독일 남부에서 강력한 지위를 누렸기 때문에 그와 그의 아들 벨프 3세는 이따금 독일 왕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벨프 3세는 1047년 카린티아 공작으로 봉토를 받았지만 1055년에 죽었다.

그가 독일에 갖고 있던 영지는 그후 조카인 벨프 4세(1107 죽음)에게 넘어갔는데 벨프 4세의 아버지는 에스테 가문의 알베르토 아초 2세였다. 벨프 4세는 소(小)벨프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 벨프 4세는 1070년에 벨프 1세라는 칭호로 바이에른 공작이 되었다. 그는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와 맺은 동맹을 저버리고 이탈리아 교황파(구엘프)의 주요지지자가 되었다. 그의 아들 벨프 5세(나중에 바이에른의 벨프 2세)는 17세 때인 1089년 당시 43세였던 토스카나 여백작 마틸다와 결혼했다.

이 결혼이 결국 별거로 끝나자 대벨프 왕가는 하인리히 4세에게 마틸다를 공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인리히는 베로나 남쪽의 노가라에 있는 마틸다의 성을 공격했지만 마틸다의 군대가 반격에 나서자 포위 공격을 포기했다. 마틸다가 죽은 뒤 에스테 가문은 벨프 5세의 이름으로 마틸다의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바이에른 공작령은 1156년 사자왕 하인리히에게 넘어갔고 하인리히는 1180년 몰락할 때까지 바이에른을 갖고 있었다.

바이에른과 작센을 비롯해 결혼으로 많은 상속 재산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영주인 벨프 왕가는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왕 및 황제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독일 왕이자 신성 로마 황제인 오토 4세는 사자왕 하인리히의 아들이었다. 벨프 왕가의 통치는 오토 4세와 함께 무너졌지만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황제에 반대하는 것이 벨프 왕가의 전통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은 벨프를 이탈리아식으로 변형하여 황제에 반대하고 교황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했다.

벨프 왕가와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화해는 1235년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오토 4세의 손자인 어린 오토(1252 죽음)에게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령을 주었을 때 이루어졌다. 이 공작령은 어린 오토의 조상들이 작센에 갖고 있던 넓은 영토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나중에 하노버 벨프 왕가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1692)와 영국 왕(1714) 및 하노버 왕국 왕(1814)의 지위를 차례로 얻었다.

러시아 황제 이반 6세는 아버지 쪽으로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벨프 왕가의 후손이었다. 벨프 왕가의 영국 통치는 빅토리아 여왕으로 끝났다. 빅토리아의 삼촌인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투스의 자손들은 1866년 7주전쟁으로 하노버 왕국을 잃었다. 이들은 1884년에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를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하노버 왕국에 대한 권리 상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컴벌랜드 공작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어니스트 오거스터스, 1845~1923)는 영지를 받지 못했다.

그의 아들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1887~1953)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딸인 빅토리아 루이제와 결혼한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날 때까지 브라운슈바이크만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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