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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비트겐슈타인

1936년부터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의 대표작인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39년 무어의 후임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는데 그때의 견해는 전기와 크게 달랐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더이상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말놀이'와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언어를 새롭게 조명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는 놀이(게임)와 마찬가지로 어떤 규칙에 의해 작동하며, 언어행위가 이러한 규칙에 따르는 행위라는 사실은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의 성격은 사용자인 인간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과의 연관 속에서 규정된다.

영국과 미국의 흐름

비트겐슈타인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주로 전통적 철학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특수개념들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후 저서의 출판 편집장이자 〈지향 Intention〉(1957)의 저자인 G. E. M. 앤스쿰은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하려고 지향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지향과 행동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영국의 이와 같은 연구는 미국에도 영향을 주어,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인 코넬대학교의 노먼 맬컴은 인식·확실성·기억·꿈 등의 개념을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옥스퍼드대학교는 철학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비트겐슈타인 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옥스퍼드 철학자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주의자라고 부르기 힘들다. 이들 철학자가 갖고 있는 방법의 특징은 한마디로 '일상언어에 대한 호소'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보통 '일상언어학파'라 불린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철학교수 W.V.O. 콰인은 논리적 원자론과 논리실증주의에서 뚜렷하게 벗어났다.

우선 그는 해당 언어의 의미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는 분석명제와 경험적·관찰적 사실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는 종합명제를 구별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러한 구별은 논리실증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대부분의 경험론자들에게는 연역과학과 경험과학을 구분하는 기초로 생각되었다. 콰인은 〈경험론의 2가지 독단 Two Dogmas of Empiricism〉(1951) 등의 저술에서 두 명제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논증했다.

콰인의 공격은 분석철학 전통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핵심적 논제와 분석철학이 주로 경험과학과의 대비를 통해 제시한 철학관에 대해서도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언어학과 분석철학 사이에 상호교류가 활발해졌다. 이런 상호교류는 분석철학자들이 항상 언어에 대한 연구를 개별언어에 대한 경험적 사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엄 촘스키의 〈통사구조 Syntactic Structures〉(1957)는 언어학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문법이론을 제시했다. 언어학자와 철학자의 교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분석철학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무어와 러셀에서 유래하는 2가지 관점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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