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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프랑스 복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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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말에 영국을 떠나 이듬해 초에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인들에게 영국을 본보기로 제시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확고해졌으며 신중한 투기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주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모방하여 프랑스에 비극을 되살리려 시도했다.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브루투스 Brutus〉는 1730년에 상연되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죽음 La Mort de César〉(1735)은 학교에서만 공연되었고 〈햄릿 Hamlet〉과 마찬가지로 유령이 등장하는 〈에리필 Eriphyle〉(1732)은 관객의 야유를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의 군주인 오로스마네가 모호한 편지에 속아, 독실한 그리스도교도인 그의 포로 자이르를 살해하는 내용을 담은 〈자이르 Zaïre〉는 이국적인 주제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한편 볼테르는 새로운 문학 장르인 역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스웨덴 국왕 카를 12세의 친구였던 파브리스와 친교를 맺었는데, 이 위대한 군인의 유별난 성격에 흥미를 느낀 그는 〈카를 12세의 역사 Histoire de Charles ⅩⅡ〉(1731)라는 전기를 썼다. 이 책은 실증자료를 이용한 세부묘사로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이 책을 쓰는 동안 그의 철학적 개념은 차츰 부각되기 시작했다. 즉 스웨덴 왕의 위업은 황폐를 가져온 반면, 그의 경쟁자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제국을 문명국으로 바꾸어놓은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위대한 인물은 전쟁을 도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명을 발전시키는 사람인데, 이것은 영국의 본보기와도 일치하는 결론이었다. 볼테르의 이러한 생각은 오랜 성찰을 통해 〈철학 서간 Lettres philosophiques〉(1734)이라는 간결한 작품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허구적인 편지들은 주로 종교적 관용이 갖는 효과를 논증하고 있다. 이 편지들은 존 로크의 현명한 경험주의 심리학과 르네 데카르트의 불확실한 억측을 대비한다. 철학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뉴턴 같은 사람은 알맹이 없는 선험적 추론을 경멸하며, 사실을 관찰하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 볼테르는 영국의 정치제도와 상업, 문학, 프랑스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셰익스피어를 소개한 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을 공격한다. 삶의 목적은 참회를 통해 천국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켜 모든 인간에게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볼테르는 결론짓는다. 작지만 뛰어난 이 책은 사상사의 이정표로서 18세기 철학을 집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정신의 기본 방향을 노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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