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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벨기에인이 주로 플라망어(벨기에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또는 왈론 방언으로 쓴 문학작품의 총체.
개요
문화적으로 볼 때 벨기에의 플랑드르 문학은 네덜란드 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반면 벨기에의 프랑스어 문학은 프랑스 문학의 일부이다.
벨기에 플랑드르 문학
플라망어를 쓰는 벨기에 지역은 종교개혁으로 북부지방이 남부 로마 가톨릭 세력에서 벗어난 1579년까지는 네덜란드와 합병되었던 곳이었다.
따라서 17세기 초반까지는 플랑드르 및 네덜란드 문학이 하나의 독립된 문학으로 여겨졌다(→ 네덜란드 문학). 북부지방은 독립하여 네덜란드 공화국이 되었지만 남부는 여전히 스페인(나중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많은 플라망어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었는데도 경제적·문화적으로는 정체상태에 있었다. 19세기초까지 플라망어 운동과 더불어 문학에서도 부흥의 기운이 일어나지 않았다.
카렐 로데베이크 레데항크가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반면 다작 작가 헨드리크 콩시앙스는 역사 및 사회 소설을 주로 썼다. 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자로는 안톤 베르크만과 비르기니 로벨링을 들 수 있으며, 특히 19세기에는 탁월한 시적 재능의 소유자인 서부 플랑드르 출신의 구이도 게첼레가 있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에는 문학지 〈반 뉘 엔 스트락스 Van Nu en Straks〉를 중심으로 비평가 아우구스트 베르메일렌, 시인 프로스퍼 반 랑엔동크와 카렐 반 데 우스테이네, 소설가 스테인 스트뢰벨스와 헤르만 테이를링크 등이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과 전후에는 지방주의 소설이 유행했으며, 급진적 개혁가 파울 반 오스타이옌은 유럽의 모더니즘 시를 도입했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대체로 소설이 지배적인 문학 양식이었으며 이때의 소설가로는 마우리세 룰란츠, 게라르트 발스하프를 비롯하여 특히 빌렘 엘스호트와 유명한 문장가 마우리세 힐리암스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통 소설은 마르닉스 게이센, 피에트 반 아켄이 이어갔고, 루이스 파울 본과 다재다능한 작가 휘고 클라우스는 보다 실험적인 소설들을 썼다. 특히 클라우스는 극작가로서도 활동했으며, 휘구에스 페르나트와 파울 스누크와 더불어 주요 전후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벨기에 프랑스어 문학
프랑스어로 된 문학작품은 일찍이 주로 플랑드르·피카르디·왈론 지방에서 발견되었는데, 9세기의 〈성(聖) 오일랄리에의 노래 Cantilène de Sainte Eulalie〉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초기 원본 가운데는 에노 지방에서 만들어진 듯한, 산문과 시가 혼합된 12세기의 노벨라 〈오카생과 니콜레트 Aucassin et Nicolette〉를 비롯하여 투르네 지역의 〈어떤 사내아이와 장님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Farce du garon et de l'aveugle〉, 리에주 지역의 〈교훈시 Poème moral〉, 필리프 무스케의 운율적인 연대기, 장 드 투앵의 서사적인 작품 등이 있다.
풍자적인 〈여우 이야기 Roman de Renart〉는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는데 그중 〈르나르의 대관식 Le couronnement de Renart〉이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13세기 벨기에 시인 아드네 르 루아는 〈클레오마데스 Cléomadès〉와 같은 서사시와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를 썼다. 그리고 14세기 장 르 벨의 연대기는 장 프루아사르 작품의 본보기가 되었다. 15세기 부르고뉴 궁정에서는 〈신백편(新百篇) Cent nouvelles nouvelles〉이 출간되었으며, 연대기 작가 조르주 샤스틀랭과 필리프 드 콩뮌이 활약했다.
2개 언어에 능통한 필립스 반 마르닉스는 종교개혁을 열렬히 옹호한 작가였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17, 18세기 벨기에의 프랑스어권 지역에서는 드 리뉴 왕자 샤를 조제프를 제외하고는 문학적으로 별 성과가 없었다. 앙드레 반 아셀트가 낭만주의 시인으로 활동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자연주의 소설가 카미유 르모니에와 샤를 드 코스테르가 활약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평론지 〈La Jeune Belgique〉·〈La Wallonie〉에 기고한 작가들과 조르주 로덴바흐, 에밀 베르하렌, 모리스 메테를링크, 샤를 반 레르베르게, 막스 엘스캄프와 같은 상징주의 운동의 시인과 극작가들이 활발하게 문학을 주도했다.
20세기의 주요극작가로는 페르낭 크로멜링크와 미셸 드 겔드로드가 있으며, 대표적 소설가로는 프란츠 헬렌스, 샤를 플리스니에, 마리 제베르와 많은 작품을 발표한 대중작가 조르주 시므농이 있다.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는 초현실주의자 앙리 미쇼를 비롯하여 마르셀 티리, 장 드 보스세르 모리스 카렘 등이 있다.
왈론어 문학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지역방언은 에노·리에주·나무르·뤽상부르 지역과 이전에는 왈론이라 불린 브라반트 남부지방에서 독특한 문학권을 형성했다.
이러한 방언으로 씌어진 작품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그후 3세기 동안 왈론어 작가들은 주로 지방연대기와 종교극을 썼다.
17세기 리에주 시는 왈론어 문학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18세기에 이 도시에서 왈론 연극협회가 발족되었다. 1856년 '왈론어 문학 리에주 협회' 창립을 계기로 문학에서 왈론 방언을 쓸 것을 적극 권장했으며, 특히 지방 시인과 극작가들은 유럽 문학의 주요경향을 작품에 반영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의 방언 연구에 힘입어 왈론 방언에 대한 관심이 새로워졌으며 이 방언의 철자법과 문법 규칙들을 표준화함으로써 문어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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