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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초기 산스크리트 문학(BC 1000경)에서 삼각주 지대에 자리잡은 방(Vanga/Banga : 여기서 벵골과 방글라데시라는 말이 유래함)라는 왕국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BC 4세기 무렵 벵골은 인도 마우리아 제국(BC 325경∼185)에 속했으며 이때 불교가 전래되었다. 4세기에는 인도 북동부 마가다 지역에 자리잡은 굽타 왕조로 넘어갔으며 750∼1200년에는 토착 벵골 왕조인 팔라 왕조와 세나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힌두 왕조인 굽타 왕조를 제외하고는 장기간에 걸쳐 불교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0세기까지 단연 힌두교가 우세했다.
이슬람교도들이 10세기가 끝나갈 무렵 인도 북부로 침략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206년 델리에서는 슬라브 또는 맘루크라고 알려진 왕조가 수립되었다. 1338년 벵골은 델리 술탄 왕조에서 분리되어 독립했으며 한참 뒤인 1576년 무굴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무굴 제국이 통치하던 기간에 유럽 상인들이 벵골 지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651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에 공장을 세웠다. 벵골에서 무굴 제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벵골의 이권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플라시 전쟁(1757)에서 동인도회사의 로버트 클라이브는 벵골의 태수(nawab)를 굴복시키고 영국의 이권에 더 호의적인 인물을 벵골의 후계자로 세웠다. 1765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의 세금징수 권한을 확보했으며 이로써 영국의 실질적인 인도 지배가 이루어졌다. 영국의 정책은 벵골인들에게 많은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벵골 지방의 수공업, 특히 모슬린 산업은 영국 기계로 만든 제품들이 도입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으며 대부분의 천연자원들이 영국으로 유출되었다.
영국의 정책으로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슬람교도의 압력으로 영국은 1905년 벵골을 분할해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는 동(東)벵골을 만들었다. 1년 뒤 다카에서는 인도 이슬람교도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조직인 이슬람교도 연맹(Muslim League)이 결성되었다. 힌두교도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이자 분할정책은 1912년 철회되었으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갈등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1947년 영국이 인도대륙에서 물러나면서 동벵골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일부로서 동파키스탄이 되었으나, 우세한 서파키스탄과 1,600km나 떨어져 있었으며 언어와 문화도 서로 다른 채 분리되어 있었다. 벵골의 민족주의적 감정은 점차 고조되어 갔다. 정당 아와미 연맹(Awami League)은 공개적으로 벵골의 자치권 획득을 위한 운동을 펴 나갔으며 1970년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국회 소집을 지연시켰고 이어 폭동이 일어나고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수백 만 명이 인도로 피난했으며 인도는 마침내 벵골인들의 편에 서서 전쟁에 가담하게 되었다. 서파키스탄은 패배했으며 1971년 12월 16일 수도를 다카로 한 독립국 방글라데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무척 컸으며 독립 이후에도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초대 대통령 세이크 무지부르 라만이 1975년 암살되었고 그의 후계자 지아 울라만 역시 1981년에 암살되었다. 1982년 또다시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호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가 진압하고 1984년 대통령이 되었으나 1990년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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