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문묘

다른 표기 언어 文廟

요약 공자를 받드는 묘우.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를 배향하고 공문10철(孔門十哲) 및 송조6현(宋朝六賢)과 신라·고려·조선 시대의 명현(名賢) 18현을 종사(從祀)했다. 중앙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설치되어 있다.

문묘 대성전

대성전 전경(1601 중건), 보물 제141호, 서울 종로구 명륜동

ⓒ 2015, All Rights Reserved.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문묘의 시작은 신라시대인 714년(성덕왕 13)에 김수충(金守忠)이 당(唐)에서 공자와 10철, 72제자의 화상을 가지고 돌아와 왕명에 의해 국학에 두면서 비롯되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공자 이하 133위를 모시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명현 18위를 동무(東廡)·서무(西廡)에 두었으나,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1949년에 동무와 서무에 종사한 중국 명현의 위판을 매안(埋安:神主를 땅에 묻는 일)하고 우리나라 명현 18위를 대성전으로 승당(陞堂)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묘는 대성전(大成殿)을 정전(正殿)으로 하고 아래에 동무·서무·제기고(祭器庫)·묘정비각(廟庭碑閣)·신삼문(神三門)·동삼문(東三門)·동서협문(東西夾門)·소문(小門)·수복청(守僕廳)·전사청(典祀廳)·포주(泡廚)·악기고(樂器庫)·차장고(遮帳庫)·악생청(樂生廳)·향관청(享官廳)·동서월랑(東西月廊)·수자간(水刺間) 등으로 되어 있다. 이는 중앙문묘인 대설위(大設位)의 제도로, 각 지방 향교의 문묘는 고을의 대소에 따라 중설위(中設位)와 소설위(小設位)로 구분되어 조금씩 다르다.

현재의 성균관 문묘는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고 몇 차례의 개수를 거쳤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동양철학

동양철학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문묘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