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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에드워드 무어

다른 표기 언어 무어 , G(eorge) E(dward) 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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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3. 11. 4, 런던
사망 1958. 10. 24,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케임브리지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실재론 철학자, 교수.

윤리문제에 대한 체계적 접근방식과 철학에 대한 정확한 접근방식으로 영국의 뛰어난 현대사상가가 되었다.

1898~1904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로 일하면서 〈판단의 본질 The Nature of Judgment〉(1899)·〈관념론 반박 The Refutation of Idealism〉(1903) 등 여러 편의 논문을 잡지에 발표하고 윤리학에 관한 주저 〈윤리학 원리 Principia Ethica〉(1903)도 펴냈다. 이 글들은 헤겔과 칸트가 영국 철학에 끼친 영향을 서서히 줄이는 데 이바지한 점에서 중요하다. 에든버러와 런던에서 살다가 1911년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윤리학을 강의했다.

1925~39년 케임브리지에서 철학교수로 일했고, 1921~47년 철학 잡지 〈마인드 Mind〉를 편집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자신을 철학 연구의 길로 처음 인도해준 버트런드 러셀과는 친구 사이였고 경제학자 존 케인스, 작가 버지니아 울프, E. M. 포스터 등과는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도했다. '선'(善)은 직관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해 '윤리적 직관주의자'로 알려졌다.

무어의 주장에 따르면 '시인'(是認)이나 '바람' 등 그 자체로는 윤리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은 개념을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무엇이 '선'인가를 분석을 통해 결정하려고 한다면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오류를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불렀다. 무어는 감각적 지각의 성질문제와 타인의 마음 및 물체의 존재문제에도 몰두했다. 그는 객체가 우리 자신의 마음 바깥에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없다고 주장한 철학자들처럼 회의적이지는 않았고 그런 주장을 극복할 수 있는 타당한 철학적 논증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무어의 이론은 대부분 널리 인정받지 못했으나 특정 문제를 다루는 독특한 접근방식과 지적 엄밀성은 영국 철학 논의의 바탕을 바꾸어놓는 데 이바지했다. 그밖의 주요저서로는 〈철학 연구 Philosophical Studies〉(1922)·〈철학의 몇 가지 주요문제 Some Main Problems of Philosophy〉(1953), 사후에 출판된 〈철학논문 Philosophical Papers〉(1959)과 〈비망록 1919~1953 Commonplace Book 1919~1953〉(1962)이 있다. 무어에 관한 글로는 P. A. 실립이 편집한 〈무어의 철학 The Philosophy of G. E. Moore〉(1952), A. P. 화이트의 〈무어:비판적 설명 G. E. Moore:A Critical Exposition〉(1958)을 들 수 있다.

George Edward Moore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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