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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링겐 삼림지대의 북쪽에 위치한 아른슈타트에서 바흐는 특히 오르간 음악에 몰두했다. 뤼네부르크에 있는 동안 그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가장 중요한 오르간 연주자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연주와 작품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1705년 10월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얻어 뤼베크까지 30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 마침내 그의 연주와 음악을 듣게 되었다. 1706년 1월 중순이 되어서야 돌아온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체재가 그에게 유익했던 듯하나 그는 그동안의 부재와 그밖의 일들로 문책을 받았다.
찬송가의 선율에 마음대로 화성을 붙여 회중이 따라 부르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칸타타를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그가 오르간에 집착한다는 것과 자신이 요구하는 음악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 지역 가수·연주자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다. 1705년 여름에는 한 바순 연주자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한 것이 거리의 난투극으로까지 발전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한 문책에 대해 그의 답변은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성의도 없었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고용주측은 그를 해고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바흐는 튀링겐 지역의 음악문화를 흡수하는 한편 북스테후데로부터도 많은 것을 얻었다. 1708년경에는 독일 선배 작곡가들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얻었으며, 최초로 독일의 북부와 남부 양식을 통합했다. 아울러 프랑스의 오르간 음악과 기악음악을 공부하기도 했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사랑하는 형의 여행에 즈음한 카프리치오 Capriccio Sopra la lontananza del suo fratello dilettissimo〉(BWV 992, 1704),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Wie Schön leuchtet〉에 의한 코랄 전주곡(BWV 739, 1705경),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과 푸가 G단조〉(BWV 535a, 1707 이전) 등이 있다('BWV'번호는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에 의한 표준적인 바흐 작품 번호로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약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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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바흐의 아른슈타트 시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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