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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1. 9. 28, 이탈리아 그라자노 몬페라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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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6. 11. 1, 그라자노 바돌리오(옛 몬페라토)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베니토 무솔리니의 독재 정권(1922~43) 때 활동한 군인·정치가.
본명은 Grazzano Monferrato.
1943년 9월 연합군과 휴전을 맺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했다. 바돌리오는 1890년 이탈리아군에 입대했고 1896년 에티오피아 전투와 이탈리아-터키 전쟁에서 싸웠다. 제1차 세계대전중인 1916년 8월 6일 몬테 사보티노 체포 계획을 세우고 지휘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의 부대는 1917년 10월 24일 카포레토 전투에서 패배를 겪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위장성으로 제대했고 이탈리아 대표로 휴전 협상을 벌였다.
1919~21년 이탈리아의 참모총장으로 있었던 그는 무솔리니의 집권 초기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으며 1922년의 로마 진군 뒤 1년 동안 정치와는 떨어져 있었다. 잠깐 동안 브라질 대사로 나가 있다가 1925년 5월 4일 무솔리니가 그를 다시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다. 1926년 5월 26일 원수가 되었다.
그는 1928~34년 사보티노의 후작으로 리비아를 다스렸다. 1935년 에티오피아에 있는 이탈리아군의 지휘권을 맡았고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했다. 1936년 잠깐 동안 에티오피아 총독으로 있었고 그뒤 아디스아바바 공작작위를 받았다.
1940년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놓고 무솔리니와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참패한 그리스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1940년 12월 4일 그는 참모총장자리에서 물러났고 무솔리니와의 결별을 밝혔다. 그러나 그 반대 이유가 도덕적인 것이었는지 또는 군사적인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바돌리오는 무솔리니의 하야를 배후에서 조작했고 1943년 7월 25일 무솔리니가 물러나면서 수상이 되었다. 9월 3일 그는 연합군과 휴전을 맺었다. 9월 8일에 연합군에 대한 이탈리아의 무조건 항복이 발표되었다.
바돌리오는 파시스트당을 해체했고 10월 13일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4년 6월 그는 독립된 로마에 새 내각의 조각을 허용하기 위해 사임한 뒤 그라자노 바돌리오에 있는 저택에 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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