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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4세기 내내 소아시아의 히타이트족은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이웃 민족의 통치자들과 수많은 협정을 맺었다.
그것은 평등한 협정이 아니라 히타이트 왕(宗主)과 그에게 예속된 통치자(封臣) 사이의 협정이었다. 서문에서 히타이트 왕은 자신을 조약인준자인 '대왕'으로 지칭한다. 그 다음에는 히타이트의 종주와 그의 봉신 사이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개관된다. 대군주가 신하에게 친절함을 보였다는 사실이 특별히 부각되는데, 이것은 조약의 조문들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봉신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봉신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충성의 서약이다.
그당시의 국제 정치에서 이집트는 히타이트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이집트의 궁정 생활을 통해 히타이트의 조약문 양식을 배웠을 것이다.
〈출애굽기〉 19장과 20장은 야훼가 무시무시한 바람으로 시나이 산에 나타났다고 전한다. 이 야훼의 현현(顯現)은 모세에게는 불타는 가시덤불과 똑같은 계시경험이었다.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히타이트의 조약이 야훼와 히브리인들의 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훼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야훼의 사랑과 관심에 대해 합당한 응답을 하는 길은 야훼의 뜻에 복종하겠다고 서약하는 것뿐이다. 학자들은 십계명(시나이 계시의 일부)이 가나안 정복 이후에 공포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십계명이 농경문화에서 유래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십계명 안에 하나도 없다. 십계명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식을 거행할 때 반포된 조문들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야훼는 유일한 참 하느님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첫째 계명이 다른 모든 신들에 대한 금령이 된 것은 당연하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신 이해가 유일신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그것이 후기에 발전된 철학적 유일신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이 인정하는 신들은 그 누구든 야훼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실천적 유일신론이다. 야훼는 그 신들을 존재하게 했고 야훼가 주재하는 회의에 그 신들이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는 모든 신들과 민족들을 지배하는 주(主)이다.
둘째 계명은 다른 신들의 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라고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둘째 계명은 본래 야훼 자신의 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우상이나 형상이 없는 예배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모세의 금령은 확실히 독특하다. 야훼는 형상을 그릴 수 없는 신이며, 따라서 물질적인 형태로 재현될 수 없다. 야훼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계시했다. 그러므로 십계명이 야훼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하거나 비윤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다른 계명들의 바탕을 이루는 관념들이 그당시의 종교 문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계명들은 야훼의 거룩하고 정의로운 성격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계명들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계약의 백성이 안정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섬기는 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훼의 피조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인·간음·도둑질·거짓말·탐욕은 정당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짓을 하면 공동체는 혼돈에 빠져 붕괴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야훼는 이집트에서 힘없는 히브리인들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그들도 고아, 과부, 거류민들, 그들의 사법권 아래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의 규정에 따라 살아가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계명들을 해석해야 했다. 모세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는 법령들을 공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법령의 대부분을 그당시의 판례법에서 끌어왔다.
아마 그는 '만남의 장막'(진 바깥에 설치된 검소한 성소)에서 어떤 법령들을 선택해 적용할 것인가를 숙고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얼굴을 맞대고 친구에게 말하듯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속죄의 수단이 강구되어야 했다. 이것은 제사와 예배에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사제들이 임명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전승에 따라 생각해보면, 히브리 제의의 원리들은 시나이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동체의 민사 문제를 관장하는 재판제도와 심문제도를 수립했다.
시나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12지파로 조직되었던 것 같다. 모세의 가장 두드러진 품성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인들이 완고하고 반역적인 행동을 일삼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옛 신앙으로 되돌아가 수송아지(성서의 본문이 전하는 바와는 달리 이 송아지는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듯함)를 섬겼을 때 야훼는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모세와 그의 후손들과 새출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세는 야훼의 제안을 거부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면서 모세는 만일 야훼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름을 야훼가 쓴 기록에서 삭제해달라고 청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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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모세와 시나이 계약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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