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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수태고지인데, 이것에 의하면 그녀는 나자렛에서 살고 있었고 요셉의 약혼녀였다(루가 1:26 이하). 마지막으로 언급된 구절은 〈사도행전〉 1장 14절에 나오는데 예수가 승천한 후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쓴 사람들 중에 마리아도 있었다.
또한 마리아는 복음서의 다음과 같은 사건에 등장한다. 즉 성수태고지, 예수의 선임자인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자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일(루가 1:39 이하), 예수의 탄생과 성전에서 아기예수를 바친 일(루가 2:1~24), 동방 박사(Magi)의 방문과 이집트로 피난간 일(마태 2:1 이하), 예수가 12세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일(루가 2:41 이하), 가나의 혼인잔치(요한 2:1 이하), 예수가 가르치고 있을 때 그를 만나려고 한 일(마르 3:31 이하), 예수의 십자가 밑에 있었던 과부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위탁한 일(요한 19:26 이하) 등이다.
이런 장면들을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으로 전체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구성할 수는 없다. 단지 그녀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설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즉 마리아가 성수태고지에서 그녀에게 부여된 특권을 받아들인 것, 예수의 십자가 밑에 마리아가 서 있었던 것, 부활절에 예수의 무덤을 보러온 '다른 마리아'(마태 28:1)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시신이 그곳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봄)은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예수의 생애에서 유년시절과 죽음 사이에 일어난 이 3가지 사건은 마리아의 인간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심지어 마리아는 예수의 본래 임무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초기시대 이후 이러한 장면이 상징하는 주제들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고 첨가되어 마리아에 대한 사상과 명상의 기초를 이루어왔다.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들과 신학자들의 마리아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르다. 즉 마리아론의 발전과 첨가가 어디까지 확산되는가를 정하는 데 있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런 발전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그 시대의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어떠했나를 대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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