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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중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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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8,101,443명 (2020년 추계) |
면적 | 88,672.67㎢ |
언어 | 인도네시아어 |
대륙 | 아시아 |
국가 | 인도네시아 |
요약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중동부에 있는 주. 남쪽은 잠비 주, 서쪽은 수마테라바라트 주, 북쪽과 북서쪽은 수마테라우타라 주에 둘러싸여 있고 동쪽은 말라카 해협, 남동쪽은 베르할라 해협을 경계로 한다. 팔렘방을 수도로 삼았던 불교국 슈리비자야 제국의 영토였던 곳으로, 7세기 무렵에는 말레이 반도에 있던 힌두 왕국들을 정복하는 전초지 역할을 했다.
남쪽은 잠비 주, 서쪽은 수마테라바라트(서수마트라) 주, 북쪽과 북서쪽은 수마테라우타라(북수마트라) 주에 둘러싸여 있고 동쪽은 말라카 해협, 남동쪽은 베르할라 해협을 경계로 한다. 동쪽에 있는 카리문·바탐·빈탄 제도와 말라카 해협에 속한 링가·싱케프·루파트·벵칼리스 제도, 남중국해 쪽의 탐벨란·아남바스·나투나 제도 같은 여러 도서군을 포함한다.
이 지역은 팔렘방(수마트라)을 수도로 삼았던 불교국 슈리비자야 제국의 영토였던 곳으로, 7세기 무렵에는 말레이 반도에 있던 힌두 왕국들을 정복하는 전초지 역할을 했다. 14세기에 슈리비자야 제국이 몰락하자 자바 섬 동부에 자리잡은 힌두 제국 마자파히트가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마자파히트 제국이 무너진 16세기에는 이슬람 계통의 국가들이 들어섰다.
1511년 포르투갈인이 말라카에 있는 말레이 국을 점령했으며 같은 해 말레이의 마지막 술탄이 리아우조호르 왕국을 세웠고, 이것이 말레이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1596년에는 네덜란드인이 들어왔고, 얼마 되지 않아 영국인들이 도착했다. 이들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세력다툼과 해적(오랑 라우트)의 침입으로 이 지방은 쇠락하게 되었다.
18세기말까지 네덜란드에게 지배를 받았고,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는 영국의 관할 아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에게 잠시 점령되었으며, 그 이후 1950년 신생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서쪽 경계지역 중반부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바리산 산맥의 바타크 고원과 파당 고원은 주 전체에서 유일한 고원지대이다. 중남부 경계 가까이에는 평균고도 722m의 티가풀루 산맥이 북쪽 방향으로 뻗어 있다. 고원지대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로칸·타풍·시아크·캄파르·인드라기리 강이 흘러드는 늪지대가 수마트라 섬 북동쪽 해안에서 내륙으로 최대너비 약 240㎞로 펼쳐져 있다. 루파트 섬과 벵칼리스 섬도 상당부분이 늪지대이다. 홍수가 자주 일어나며 해안은 여러 개의 강어귀로 깊숙이 파여 있다. 늪지에는 사초속(莎草屬)의 각종 식물과 판다누스·등나무·양치류 같은 식물들이 자라고 그 가장자리에는 보통 대나무숲이 늪지의 경계를 이루며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강어귀 쪽에는 홍수림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쌀·옥수수·카사바·콩·코프라·감비어(염료)·후추 등을 재배하는 농업을 주로 하며 목재생산과 어업도 이루어진다. 빈탄 제도와 싱케프 제도에서는 주석과 보크사이트 광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식품가공업·제지업·목공업 등의 산업이 행해진다. 내부수송은 보통 하천선(河川船)을 통해 이루어지며 도로는 대부분 주도인 파칸바루 주변의 배후지까지만 연결되어 있다.
사카이·라우트·후탄·아키크족(族) 등 주로 이슬람교도인 수많은 종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코스탈말레이인과 중국인도 주민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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