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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빈치의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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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년 프랑스인들이 밀라노에서 당분간 축출되는 정치적인 사건들로 인해 60세가 된 레오나르도는 또 이사를 해야 했다. 그해말 그는 새 교황 레오 10세의 형제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로마로 갔다. 줄리아노는 바티칸에 있는 그의 저택 벨베데레 궁의 방들을 그에게 주었고 월급도 많이 주었으나 큰 일은 맡기지 않았다.

3년 동안 레오나르도는 도나토 브라만테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짓고 라파엘로가 교황의 새 저택의 방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로마 한쪽에 처박혀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의 묘를 완성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페루치, 티모테오 비티, 소도마 같은 젊은 화가들이 거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공방에서 수학을 연구하다가 기술적인 실험을 하고 도시를 거닐며 고대 건물들을 살펴보곤 하는 등 낙담해서 나날을 보냈다. 그는 브라만테와 사귄 듯하나 브라만테는 1514년에 죽었고, 다른 예술가들과는 사귄 것 같지 않다. 그런 고독함 때문에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젊은 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프랑스로 갔던 것 같다.

1516년말 그는 가장 충실한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와 함께 이탈리아를 영원히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 3년간을 루아르 강변의 앙부아즈에 있는 왕의 여름 궁전 근처 클루(후에 클로뤼세라 부름)의 작은 집에서 보냈다. 그는 '왕의 수석 화가·건축가·기술자'라는 자랑스런 칭호를 부여받았다. 이무렵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았고 불가사의하며 신비스런 〈세례 요한 St. John the Baptist〉을 그린 것이 전부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례 요한〉

목판에 유채 / 69×57cm / 1513년경 제작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1층 5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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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는 그의 과학 연구를 분류하고 편집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또 회화에 관한 논문의 마지막 초고와 해부학에 관해서도 몇 장 썼다. 〈떠다니는 인물 Floating Figure〉(윈저 성 왕실도서관 소장)과 같은 마지막 소묘들은 소멸하지 않는 그의 천재성을 입증해준다. 〈세상의 종말 Visions of the End of the World〉이나 〈대홍수 Deluge〉(윈저 성 왕실도서관 소장) 같은 소묘에서 그는 엄청난 상상력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힘을 묘사했다.

1519년 5월 2일 레오나르도는 클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생플로랑탱이라는 궁정교회에 안치되었으나 19세기초 그 교회가 완전히 철거되어 그의 무덤 또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작품과 과학적 유산은 프란체스코 멜치가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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