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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12월 21일이나 22일 무렵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이며, 북반구에서는 1년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추위도 점차 심해지기 시작한다. 이날 팥죽을 쑤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집안 곳곳에 놓아 악귀를 쫓았다. 새 달력을 만들어 걸었으며, 뱀 사(蛇)자가 씌어진 부적을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놓기도 했다. 이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고, 눈이 많이 오고 추우면 풍년이 들 것을 예상하기도 했다. 2023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의
24절기 중 22번째 날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있는 절기.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된다. 동지는 태양의 황경이 270°인 날로 대개 양력 12월 21~22일 무렵이다. '동지'라는 이름답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어 기온이 뚝 떨어진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가려 부르기도 하는데, 애동지에는 전해지는 풍습이 다른 때와 다르다.
무형유산 정책이 전문 기·예능을 보유한 전승자 중심에서 온 국민이 함께 전승해온 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확대됨에 따라, 2023년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향유·전승되어온 명절인 동지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래
'동지'라는 말은 '겨울(冬)에 이르다(至)'는 뜻이다.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짧은 날이며, 그 다음날부터 낮의 길이가 길어진다. 농업을 중시했던 고대에는 태양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나며,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아 매우 중요한 절기였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정조 때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설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동지가 드는 달인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불렀는데,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는 '중동지(中冬至)', 하순에는 '노동지(老冬至)'라고 달리 불렀다.
중국 주나라 때에는 동지를 새해의 첫 날로 삼았으며, <역경(易經)>에서도 일년의 첫날을 동지로 삼았다. 이런 전통은 당나라에도 이어져, 당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서도 이날을 기점으로 역(曆)을 헤아렸는데, 당나라의 역법을 받아 썼던 고려 시대까지는 동지를 새해의 첫날인 설날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통은 고려 말까지 이어지다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받아들인 충선왕(1309) 때에 지금의 설날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고문헌에서 동지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는데, 초후(初候)에는 지렁이가 움추러들고, 중후(中候)에는 큰 사슴의 뿔이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샘물이 얼어붙는다고 기록하여, 본격적인 겨울 날씨가 시작됨을 밝히고 있다.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한국의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풍속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길기 때문에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지에는 동짓팥죽을 끓여 먹는 것이 고려 때 이후의 오랜 관습인데, <동국세시기>에 중국의 문헌에서 인용한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중국 요순 시대에 살았던 공공씨(共工氏)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팥을 무서워했다. 그 아이가 동지에 죽어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 되었는데, 살아 있을 때 팥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기억한 사람들이 동짓날 팥죽을 쑤어 이 귀신을 경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동짓날에 팥죽을 먹지 않았는데, 아이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의 위력이 집안의 아이한테도 미쳐 탈이 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일 때 붉은 팥죽 국물을 떠서 집의 문 안팎과 담장, 집앞의 고목 둥치 등에 뿌려서 귀신을 쫓았다. 팥죽이 다 끓으면 사당에 올려 동지차례를 지냈고, 집안에서 모시는 가신에게 올린 후 가족이 먹는 것이 관례였다. 설날의 떡국과 같이 동지팥죽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까지 동지는 설날과 함께 공식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절기였다. 동지에는 중국에 예물을 보내는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했으며, 관상감에서 이날 새해 달력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이 달력에 어새를 찍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관리들 사이에도 동지에 서로 달력을 선물하는 것이 관례였다.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뱀사(蛇) 자를 써서 집의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놓기도 했는데, 이를 '동지부적'이라고 했다.
동짓날에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새해에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었고, 날씨가 따뜻하면 질병이 많을 것이라고 여겼다. 제주도에서는 이날 제주특산품인 귤을 왕에게 진상했고, 왕은 진상 받은 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11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12월 무렵에 해당)'에 동지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 절기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졀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귀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작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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