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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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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2세기부터 제노바의 정치·군사·경제 활동을 주도한 가문.
D'oria라고도 씀.

봉건시대에 리구리아와 프로방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리아 가문은 12세기초 제노바의 기록에 처음 나타났다. 안살도 도리아는 1134년에 제노바 자치시의 콘술(집정관)로 뽑혔으며 외교사절과 군사원정에 몇 번 참여했다. 그의 아들인 시모네는 1175~88년에 6번이나 콘술직을 지냈다.

도리아 가문은 오래전부터 기벨린(황제파)을 이끌어오고 있었으며, 시모네의 아들 중 1명인 안드레아가 사르데냐 섬을 통치하던 토레스 가문의 여성과 결혼한 뒤부터 이 섬에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1270년 안드레아의 손자 오베르토 도리아(1295 죽음)와 제노바의 또다른 유력 가문 출신 오베르토 스피놀라는 카피타노 델 포폴로(→ 포폴로)직을 맡아 독재 권력을 장악했고 이때부터 제노바에서는 이 두 가문에 의한 2인 정부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베르토 도리아는 중세시대 제노바 자치시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15년간을 다스렸으며 1284년 피사와 싸울 때 멜로리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영웅이 되었는데 도리아 가문 사람 250명이 여기 참여했다고 한다.

도리아 가문 사람들은 제노바가 크림반도에 건설한 식민지 카파와 흑해 남부에 있던 트레비존드 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여행가이며 지도 제작자인 도메니코 도리아는 1285년 몽골로부터 유럽 대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14세기에는 도리아 가문과 스피놀라 가문의 여러 사람들이 카피타노 델 포폴로직을 공동으로 맡았다.

인민혁명이 일어나 도제(doge)라는 새 권력직이 생겨난 뒤 도리아 가문은 정부 공직에서 배제당했지만(1339~1528) 제노바가 베네치아와 끊임없이 싸우는 동안 제노바의 군사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16세기에는 도리아 가문의 가장 위대한 인물인 안드레아 도리아의 활약으로 도리아 가문이 다시 제노바 정계에 나서게 되었다. 그의 증조카이자 부관이고 후계자였던 조반니 안드레아(1539~1606)는 투르크와 싸운 키프로스 전쟁(1570~71)에서 제노바 해군제독으로 활약했으며 지중해 동부에서 투르크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 레판토 전투(1571)에도 참여했다.

16~17세기에 도리아가는 제노바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성장하면서 주로 스페인에 군사를 계속 공급했다. 안드레아 도리아 때부터 시작된 '귀족 공화국' 시대(1528~1797)에 도리아 가문은 도제 6명과 많은 대사, 고위 성직자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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