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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도시국가 제노바의 융성기인 12~14세기에 제노바를 지배한 귀족 가문 가운데 하나.
10세기에 봉건 영주 마르케세 오베르팅기의 대리인으로서 제노바를 통치한 이도 자작의 둘째 아들의 후손들이다. 귀족 집정관이 다스린 12세기의 자치시에 많은 집정관을 배출했다. 구이도 스피놀라는 1102~21년에 여러 차례 콘술(집정관)을 지냈다.
그의 후손으로 그와 이름이 같은 구이도는 1190년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제노바 함대를 지휘했으며 그후 계속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했다.
13세기 전반기에 구엘프(교황파)가 우세했던 제노바에서 스피놀라 가문은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지지하는 기벨린(황제파)을 이끌었다. 니콜로 스피놀라(1240 죽음)는 프리드리히 함대의 총사령관을 지냈다. 1237년 굴리엘모 스피놀라는 구엘프 포데스타(최고 행정관)에 맞서 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포데스타는 반군을 추방하고 그들의 집과 재산을 파괴한다고 선고했으나 제노바 대주교의 중재로 판결을 취소했다. 1270년 오베르토 스피놀라와 오베르토 도리아는 국민의 지도자로서 정권을 장악했고 그들 두 가문이 주도한 일련의 정부들 가운데 최초의 정부를 설립했다. 이 두 사람은 중세 제노바 자치시의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는 약 15년 동안 제노바를 통치했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도리아 가문의 인물과 함께 정부를 주도한 스피놀라 가문의 인물로는 오베르토 스피놀라의 아들인 코라도,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7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당시의 오피치노 스피놀라, 그리고 한참 뒤인 1335년의 갈레오토 스피놀라가 있다. 당시 두 가문의 통치 체제는 결국 민중의 반란과 제노바의 첫 도제직 설치(1339)를 야기시켰다. 스피놀라 가문은 여러 차례 재집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후대에 제노바가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의 지배를 받고 그후에 스페인·오스트리아·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 스피놀라 가문은 군인, 고위 성직자, 대외 사절 및 문학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안드레아 도리아의 헌정개혁으로 도제직이 부활되자 바티스타 스피놀라는 1531~33년 그 직위를 장악했다. 스피놀라 가문 출신의 유명한 군인으로는 스페인의 장군인 암브로히오 디 스피놀라(1569~1630)가 있다.
또한 스피놀라 가문은 3명의 제노바 대주교와 13명의 추기경을 배출했다. 이 가문의 문필가 가운데는 리구리아 역사에 관한 저술들을 남긴 마시밀리아노 스피놀라(1812~79)를 비롯해 여러 명의 역사가가 있다. 유명한 여성으로는 이탈리아의 혁명적 애국자인 주세페 마치니와 그의 추종자들의 대의를 지지한 라우라 디 네그로 스피놀라(1838 죽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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