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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31년 안함광(安含光)과 백철(白鐵)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
안함광이 평론 〈농민문학 문제에 대한 일고찰〉(조선일보, 1931.8. 12~13)에서 농민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약칭 프로 문학)의 관계에 대해 소박하게 논한 것을 백철이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프로 문학은 한국문학사에 있어 이바지한 것이 많았으나 이 논쟁이 일어날 당시에는 아직 성숙된 상태는 아니었다. 작품의 성과도 그러했지만 문학이론에서도 관념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민중의 대다수를 이루었던 농민의 현실과 관계된 이론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던 가운데 1930년 11월 하리코프에서 국제혁명작가회의 주최로 열린 제2회 국제 프롤레타리아 작가대회는 프로 문학론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안함광의 위의 글은 바로 이 대회의 교훈에 따라 한국의 프로 문학이 농민문학에 소홀했음을 비판하고,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서는 먼저 농업혁명을 거쳐야 하며 프로 문학운동에서도 농민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킨 글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함광은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유기적 관계를 말하면서 '빈농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주입'이라는 관점에 섰고, 문학에서도 이를 요구했다.
곧 농민문학이란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를 빈농계급에게 적극적으로 주입하는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철은 바로 안함광의 '적극적 주입론'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의 첫번째 평론인 〈농민문학 문제〉(조선일보, 1931. 10. 1~20)에서 안함광의 '적극적 주입론'을 기계주의적 편견이라고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당의 빈농에 대한 견해와 정책은 빈농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기계적·명령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에 의해 감화를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농민문학을 프로 문학의 하위 범주로 설정한 안함광의 주장을 비판하고, 농민문학은 궁극적으로는 프로 문학과 일치하더라도 엄밀하게 프로 문학의 '동맹문학'으로서 독자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백철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의 이론, 특히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唯人]의 이론을 빌려온 것이었다. 이에 안함광은 〈농민문학의 규정 문제〉(비판, 1931. 12)에서 백철의 농민문학론에 대해서는 일본 이론에 영향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백철의 비판방법이 선동적이었다고 비난했다.
즉 자신의 이론은 농민문학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원칙적 제의에 지나지 않았는데, 백철은 원칙론을 구체적 방법론으로 끌어올려 비판하는 선동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더이상 진전되지는 않았지만, 농민문학의 계급적 위상을 밝히려 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 이 논쟁이 있기 전에도 비프로 문학계열에서 농민문학론이 나왔고, 프로 문학계열에서도 대중화 문제와 관련해 농민문학이 나왔었지만 계급적 위상에 대해서는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안함광의 경우는 프로 문학이 농민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심이 있었고, 반면 백철은 프로 문학과 구별하는 독자적 농민문학의 건설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양자 모두 농민의 현실을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연관시켜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과거 프로 문학의 좌익편향을 반성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주입론'이라는 과거의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백철의 경우 농민문학의 독자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프로 문학과 농민문학의 관계를 양립적인 것으로 본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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