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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중국 북부의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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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 아시아 |
국가 | 중국 |
길이 | 1,515km |
특징 | 유네스코 세계유산 (2014년) |
요약 중국의 운하.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 수로이다. 대운하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양쯔 강과 화이허 강 유역에서 수도 베이징까지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수월하게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다. 19세기에 몇 차례의 대홍수로 황허 강의 제방이 무너져 쉬저우와 칭장을 잇는 운하에 큰 문제를 일으켰고, 린칭과 지닝 사이의 운하가 끊어졌다. 이후 운하의 북쪽 구간은 차츰 황폐해졌는데 1958년 공산당 정부가 64㎞ 길이의 새로운 운하를 만들고 근대식 갑문을 추가로 설치했다. 길이 1,515km.
총길이가 1,515㎞를 넘는 이 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엄밀히 말하면 전부 인공은 아님) 수로이다. 대운하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양쯔 강[揚子江]과 화이허 강[淮河] 유역에서 수도 베이징까지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수월하게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다.
대운하 중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부분은 양쯔 강에서 장쑤 성[江蘇省]에 있는 도시 칭장[淸江]까지이다. 칭장은 원래 황허 강[黃河] 유역에 있었지만, 그후 황허 강이 훨씬 더 북쪽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강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 구역은 전통적으로 산양(山陽)운하라고 불리다가 수백 년 전부터 난[南] 운하라고 불리고 있다. 이 오래된 수로는 BC 4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그후 607년에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수나라(隋:581~618)는 607~610년 최초의 대운하망을 건설했는데 황허 강(이때는 황허 강이 북쪽을 지나고 있었음)에서 화이허 강까지 이어지는 북서-남동 방향의 수로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볜[汴] 운하는 당대(618~907) 내내, 그리고 송대(960~1126) 초기까지 가장 중요한 수로로 기능을 발휘했다. 원나라(1271~1368)가 출범한 뒤, 수도인 베이징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또다시 대규모 수송망을 확립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원은 1282~83년 황허 강과 산둥 성[山東省] 북쪽의 다칭 강[大淸河]을 잇는 새로운 운하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황허 강은 1195년부터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칭장 밑에 있는 옛 화이허 강 어귀를 침범하고 있었다.
원은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다칭 강의 바닥을 준설했지만, 다칭 강 어귀에는 금방 또다시 토사가 쌓이곤 했다. 칭다오[靑島] 항구에서 시작하여 예 현[掖縣]까지 이어져 산둥 반도[山東半島]를 가로지르는 대체(代替) 수로도 역시 실용성이 없다고 판명되어 계획을 포기했다. 결국 황허 강 유역의 둥안전[東安鎭]과 웨이허 강[衛河] 유역의 린칭[臨淸]을 잇는 새로운 후이퉁[會通] 운하가 건설되었다. 오늘날의 대운하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원대에는 운하 수송이 값비싸고 비효율적이어서 대부분의 식량은 바다로 운반되었다.
명(1368~1644) 초기의 수도 난징[南京]에서 1403년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뒤부터 대운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운하(웨이허 강 유역의 린칭에서 황허에 이르는 부분도 준설하고 개수하여 다시 사용함)는 19세기까지 계속 기능을 발휘했다.
대운하는 6개의 주요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① 베이징 주변에서 퉁 현[通縣]에 이르는 짧은 수로, ② 바이허 강[白河]과 톈진[天津]을 잇고 다시 웨이허 강 유역의 린칭까지 운하를 파서 이어지는 강, ③ 산둥 성에 있는 구간(이 구간은 상류에서 운반되어 쌓인 토사 때문에 비교적 바닥이 높으며, 린칭에서 시작하여 지닝[濟寧] 근처에서 바닥이 최고로 높아졌다가 쉬저우[徐州] 근처에서 다시 낮아지는 이 까다로운 수로에 수많은 갑문과 댐을 설치하여 타이산 산[泰山]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작은 강과 지닝 남동쪽의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고 있음), ④ 쉬저우에서 황허 강의 남쪽 진로를 따라 칭장까지 뻗어 있는 구간, ⑤ 칭장에서 옛 산양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양쯔 강 유역의 전장[鎭江]까지 이어지는 구간, ⑥ 양쯔 강 남쪽 구간(장난[江南] 운하라고 부르는 이 구간은 총길이 약 320㎞로 양쯔 강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쑤저우[蘇州]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항저우까지 이어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에 몇 차례의 대홍수로 황허 강(황허 강은 이때부터 지금의 북쪽 진로로 서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음)의 제방이 무너져 쉬저우와 칭장을 잇는 운하에 큰 문제를 일으켰고, 린칭과 지닝 사이의 운하가 끊어졌다. 태평천국운동(1850~64)과 염군(捻軍)의 난이 일어난 뒤 베이징에 식량을 공급하는 주요보급로로 운하를 이용하는 것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고, 운하의 북쪽 구간은 차츰 황폐해졌다. 1934년부터 국민정부는 칭장과 양쯔 강 사이의 운하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중간급 기선들의 운항을 위해 운하 바닥을 깊게 파고 대규모 개축공사를 벌였으며 갑문도 여러 개 만들었다.
1958년 공산당 정부는 대운하 전체를 600t급 선박이 다닐 수 있는 수로로 복구하기 위해 새로운 공사를 시작했다. 1958~64년 대운하를 넓히고 준설하여 더욱 보강했으며, 64㎞ 길이의 새로운 운하를 만들고 근대식 갑문을 추가로 설치했다. 지금은 중간급의 화물선이 대운하의 어느 수로로나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교통량은 대부분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 운하는 또한 양쯔 강의 물줄기를 북쪽의 장쑤 성으로 돌려주는 일도 한다. 이 관개시설 덕분에 장쑤 성에서는 벼의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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