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정통교리와는 달리 그리스도가 오직 하나의 의지만 가졌다고 주장했던 7세기의 몇몇 그리스도교인.
이들은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있다는 확고하게 설정된 교리를 기반으로 그리스도 인격의 통일에 대한 문제를 풀고자 했다.
이 논쟁은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그리스도는 오직 한 본성만 갖고 있다고 가르쳐 파문을 당하고 박해를 당한 이집트와 시리아의 단성론자들, 혹은 유티케스 추종자(Eutychians)들을 교회와 제국으로 다시 불러오려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 유티케스주의). 헤라클리우스는 622년 아르메니아에서 세베루스파 단성론자들의 지도자에게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은 한 인격 안에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만, 하나의 의지(thelēma)와 하나의 작용(energeia)만 갖고 있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세르기우스는 이 교리를 강력히 지지했고, 이 문제에 관해 황제의 고문 역할을 했다. 638년에 헤라클리우스는 〈신앙에 관한 진술 Ekthesis〉을 발표했고, 이로써 그의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 책은 매우 격렬하고 광범위한 논쟁을 유발했고, 결국 헤라클리우스의 계승자 콘스탄스 2세는 648년 이 문제에 관한 논의를 전면금지시키는 칙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서방 교회의 항의가 있었지만 이 칙령은 논란을 잠재웠다.
668년 콘스탄티누스 4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이 논쟁이 다시 일어났고, 680년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총회를 소집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로마에서는 아가토 교황의 주도로 주교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아가토교황은 하나의 본성에는 반드시 하나의 의지가 있으며 따라서 두 본성에는 두 의지가 있다.
인간의 의지는 다만 전능한 하느님의 의지에 일치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콘스탄티노플 3차 공의회는 단의론을 정죄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에는 두 의지와 두 작용이 있음을 주장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