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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아르메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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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13 이후 |
국적 | 비잔틴 |
요약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711~713 재위).
본명은 Vardan.
그의 짧은 재위기간은 교황청과의 갈등과 불가리아 및 아랍 침략자들로부터 제국을 방어하지 못한 무능력으로 점철되었다. 필리피코스는 페르가몬(지금의 터키 서부의 베르가마)의 귀족 니키포로스의 아들이었다. 그의 본명인 바르단은 어머니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황제 티베리오스 3세 아프시마르(698~705 재위)는 바르단이 제위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이오니아 제도의 케팔로니아 섬으로 추방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의 정적인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711년 그를 소환하여 반란을 진압하라고 케르손(크림 반도에 있음)에 파견했다. 그러나 바르단은 케르손과 결탁해서 필리피코스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황제임을 선포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침공해 제위를 찬탈한 필리피코스는 유스티니아노스와 그 가족을 살해했다. 필리피코스는 이단인 단의론의 옹호자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기 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차 공의회(여기서 680년 단의론을 배격했음)를 묘사한 그림을 왕궁에서 치워버릴 것과 이 공의회가 배격했던 인물들의 이름을 복원시킬 것 등을 명령했다. 키로스 총주교는 새 정책을 지지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었으며, 712년초 요안니스 부제로 교체되었다. 따라서 교황 콘스탄티노는 이 새로운 황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외정책에 있어 필리피코스의 통치는 참담한 것이었다. 712년 불가리아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을 포위했으며, 712~713년에는 아랍인들이 수개 도시를 포위했다. 713년 6월 3일 군사 정변의 주모자들이 필리피코스 정부를 축출하고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안테미오스를(주로 원로원과 시민들의 선동으로) 아나스타시오스 2세로 옹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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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필리피코스 바르다니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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