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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콜로라도 주 남부, 유타 주 대부분, 애리조나 주, 뉴멕시코 주 등 미국 남서부지역과 멕시코 북서부에 사는 인디언.
문화와 언어 면에서 아주 다양하지만 크게 4 집단으로 나누는데, ① 유마족(유마족·모하비족·아바수파이족·우알라파이족·코코파족·마리코파족·야바파이족 등), ② 피마족과 파파고족, ③ 푸에블로족(호피족·하노족·주니족·아코마족·라구나족·제메즈족·산타아나족·지아족·코치티족·산토도밍고족·산펠리페족·산후안족·산타클라라족·산일데폰소족·남베족·테수케족·타오스족·피쿠리스족·이슬레타족·산디아족 등), ④ 나바호족과 아파치족 등이다.
유마어·아스텍타노어·아타바스카어를 쓴다.
남서부 인디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부족은 푸에블로 인디언이다(푸에블로 인디언). 이들의 선조는 큰 벼랑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으며, 아도비 벽돌이나 돌로 만든 꽤 정교한 공동주택을 짓고 살았다.
이 집들 일부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며 푸에블로 인디언은 적어도 그 기원이 스페인 점령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언어와 몇 가지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타바스카 나바호족이나 아파치족이 무력으로 이 지역에 들어왔는지 아니면 평화스러운 이웃으로 들어왔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푸에블로족과 나바호족, 아파치족의 관계는 처음에는 적대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적응해갔다.
1680년 나바호족은 푸에블로족과 함께 뉴멕시코에서 스페인 사람들을 몰아냈다. 그뒤 리오그란데 푸에블로족 일부는 나바호족과 합쳐 하나의 부족을 이루었다. 이들 아타바스카족은 아마도 북쪽지역, 즉 캐나다에서 내려왔을 것으로 보이며 캐나다에는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이 아타바스카어군에 들어가는 말이 많이 남아 있다.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가 1540년 미국 남서부지역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아타바스카 인디언들이 옮겨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산후안 강을 따라 자리잡고 있던 거대한 푸에블로족 사회가 붕괴하던 시기와 일치하는 13세기말에 처음으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으로 옮겨올 때 나바호족은 유목과 식량 채집 생활을 했으나 차차 푸에블로족에게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8세기초에는 이미 농사가 주요경제활동이 되었으며, 양과 염소 같은 가축을 사육했다.
또 이미 모직담요도 만들기 시작했다. 지카릴라족과 서부 아파치족을 빼면, 아파치족은 남서부 정착민들보다 평원 인디언과 더 많이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콜로라도 강을 따라 살던 부족들은 농경과 야생식물채집, 사냥을 했으며 유마어를 썼다(유마족). 야바파이·아바수파이·우알라파이의 세 부족은 그랜드캐니언 근처에 살았다. 이들 가운데 아바수파이족은 적어도 생계의 절반을 농경에 의존했으나 다른 두 부족은 의존도가 그보다 적었다.
콜로라도 강 하류 끝에 살던 코코파족·유마족·모하비족·마리코파족(이 부족은 1700년 이전에는 힐라 강 유역에서 피마 인디언과 함께 살았음) 등은 기본적으로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관개시설을 이용했다. 이들이 만든 뛰어난 도기들은 푸에블로 도기 유형에서 따온 것이었다.
최근 들어 남서부 인디언의 생활조건이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처음 300년 동안은 스페인이, 그 다음에는 미국이 지배하면서, 인디언과 비(非)인디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인디언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분열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인디언들의 실업률은 매우 높아 어떤 때는 미국 전체실업률의 10배에 이르기도 한다. 인디언 지도자들은 알코올 중독을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들고 있다.
인디언 부족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소간 외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원조를 제공하고자 했다(→ 인디언 재조직법). 그리하여 도로·학교·병원 등이 세워졌으며, 인디언 지역에서 발견된 석탄·우라늄·석유 같은 천연자원을 개발할 목적으로 정부만이 아니라 사기업들도 원조를 해왔다. 한편 많은 인디언 지도자들은 '백인'이 주는 도움이 '자립'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디언의 시각에서 인디언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각 부족 안에, 또는 여러 부족들 사이에 많은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인디언 언어학교, 인디언 소유기업 등을 세우고, 인디언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장학기금도 마련했다. 또 '인디언의 주체성'을 키우기 위해 인디언의 예술·기능·신념·전통 등을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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