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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문화

다른 표기 언어 樂浪文化

요약 낙랑군의 문화.

낙랑군은 BC 108년 한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땅에 설치한 4군 중의 하나이다. 낙랑군은 중국 왕조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313년 멸망될 때까지 400년 이상 존속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중국 랴오닝 성 일대에 위치하였다는 설과 평양 일대라는 설이 양립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자료, 특히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볼 때 평양 일대라는 설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평양의 토성리 토성은 대동강 남안에 위치한 4각형 토성으로서 그 내부에서는 "樂浪禮官", "樂浪富貴", "大晉元康" 등의 명문이 있는 와당과 "樂浪太守章" 등의 글자가 찍힌 봉니가 발견되어서 낙랑군의 치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인근의 석암리·정백리·도제리·오야리 일대에는 수천 기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많은 수의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주로 덧널무덤[木槨墳]과 벽돌무덤[塼築墳] 들이다. 그 내부에 부장되어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서 낙랑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껴묻거리들은 한식 유물이 주류를 점하는데, 특히 각종 칠기류가 주목된다. 칠기의 종류에는 귀잔[耳杯]·국자[勺]·쟁반[盤]·화장품통[匳] 등이 있다. 그중에는 제작연대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청동기로는 향로의 일종인 박산로와 각종 솥[鼎]이 대표적이다. 청동으로 만든 각종 거울에도 연대나 길상구가 새겨진 경우가 많이 있다. 장신구로는 귀걸이·팔찌·띠고리[帶鉤] 등이 있는데, 특히 석암리9호분에서 출토된 금제띠고리는 용의 형태를 타출하여 나타낸 후 작은 금알갱이를 붙이고 푸른 옥을 감입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이밖에도 쇠칼[鐵劍]·손칼[刀子]·쇠뇌[弩]·화살촉·창·쇠가지창[戟] 등의 무기류, 수레갖춤[車輿具]이나 말갖춤[馬具], 토기류 들이 발견되고 있다. 토기는 회색의 와질계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연유를 발라 구운 녹유 토기도 있다. 그외에 채협총에서 발견된 바구니[彩篋]는 대나무로 짠 후 겉면에 각종 인물상을 채색한 것으로서 낙랑의 공예와 회화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낙랑문화는 기본적으로 중국 한대의 문화와 한반도 서북지방의 토착문화가 융합되어 나타난 것으로서 토기제작술·기와제작술·금속공예술 등이 특히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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