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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경기 개성, 1910. 1.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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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1. 6. 22,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를 통해 아카데미즘적 화풍을 정착시킨 대표적 서양화가.
조각가 김경승의 형이다. 1932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재학중 1936년 일본 문부성 전람회와 광풍회 전람회에 출품·입선했다. 1937년 졸업했고 그해 선전에 〈나부 裸婦〉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1940년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전시체제(戰時體制)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심형구 등과 함께 적극적인 부일(附日)활동을 전개하여 여러 전람회에 참여했다. 해방 후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가 생기자 1972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49년 국전이 개설된 이후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을 지냈고 1958년 목우회를 창립했으며, 한국미협 이사장과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거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작품세계는 충실한 데생에 중후한 색조, 정적인 분위기 등이 특징이다. 초기작품에서는 서양여인을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았다. 내용과 양식면으로 볼 때 선전의 아카데미즘에 걸맞는 인물좌상, 나부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전 서양화부 운영위원, 추천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카데미즘 화풍의 정착에 큰 역할을 했으며 상류층 부인, 저명인사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197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미를 소재로 한 작품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 〈자화상〉(1933)·〈나부〉(1937)·〈실내〉(1937)·〈춘조 春調〉(1942)·〈김성수 초상〉·〈육영수 초상〉등과〈여인상〉시리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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