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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는 심한 식량부족으로 광범하고 지속적인 굶주림, 쇠약함, 사망을 야기시키는 현상. 기아현상은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대기아현상은 모든 집단의 성원들에게 똑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식량이 부족한 국가나 지역의 모든 사회계층과 사회집단에 피해를 주는 경우이다. 지역적 기아는 한 국가의 특정지역에 나타나는 경우이며, 계층적 기아는 특정한 인구집단이 식량부족 국가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당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아는 많은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자연적 원인과 인위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기아는 가뭄, 집중호우, 홍수, 이상한파, 태풍, 농작물 병충해 같은 일로 농작물이 파손되고 식량공급이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인위적 기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문화적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인위적 기아현상은 전쟁에서 비롯되는 기아이다.
기아현상은 피해인구와 피해지역에 따라서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대(大)기아현상은 모든 집단의 성원들에게 똑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식량이 부족한 국가나 지역의 모든 사회계층과 사회집단에 피해를 주는 경우이다. 지역적 기아는 한 국가의 특정지역에 나타나는 경우로, 보통 그 지역의 모든 사회집단이 피해를 입는다. 계층적 기아는 특정한 인구집단이 식량부족 국가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당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기아가 어느 곳에서 주로 일어나는가 하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아는 많은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대략 자연적 원인과 인위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적 또는 물리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기아는 가뭄, 집중호우, 홍수, 이상한파, 태풍, 농작물 병충해, 곤충떼 출몰 등으로 농작물이 파손되고 식량공급이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가뭄은 가장 일반적인 자연적 원인으로, 건조지대나 반건조지대에서 일어나는 기아현상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가뭄은 기아지역과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곧 관개용수로 쓰이는 큰 강 상류지역에 가뭄이 들면 그 물을 공급받는 하류에서 기아로 고통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록에 전해지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아는 BC 4000년경 고대 이집트와 중동지방에서 발생한 기아이다. 이런 기아는 자연재해로 집약적 정착농업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물리적 기아라고 부른다.
1700년 이후 아시아 대륙은 세계 주요 기아발생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기아현상 대부분은 인구과잉에서 비롯된 식량부족을 특징으로 한다. 아시아 대륙의 기아는 농산물생산량이 겨우 목숨을 이어갈 수준이거나 그 수준을 약간 웃도는, 가뭄 또는 홍수빈발지역에서 발생해왔다.
인도와 중국은 인구과잉으로 기아가 일어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기록에 따르면 인도에는 기아가 14세기부터 시작되어 20세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1702~04년 인도 데칸 고원에서 기아 때문에 200만 명 가량이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1967년에는 비하르 지방에 아주 심한 기아가 일어났으며 주요 국제구호 단체들의 노력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1876~79년 북부지방에서 일어난 기아로 900~1,300만 명 가량이 죽었다. 중국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1928~29년 300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등 기아에 시달렸다(→ 인구, 인구밀도).
인구과잉만이 현대에 일어난 기아의 원인은 아니다.
1846~47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잎마름병 때문에 일어난 농작물폐해로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가뭄 때문에 일어난 기근으로 150만 명 가량 되는 인명피해가 났다(1971~73). 1980년대 중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에 가뭄이 발생하여 약 1억 5,0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심한 식량부족으로 건강과 생존에 큰 타격을 받았다.
자연적 기아와는 달리 인위적 기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문화적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
로마 시대에 심각했던 만성적 식량부족은 로마 당국이 식량이 모자라는 지역으로 식량을 수송할 능력이 없거나 보낼 뜻이 없어서 발생한 교통기근이라고 할 수 있다. 곡식은 로마 황제들에게 일종의 재산이었으며, 영토 일부에서 기아로 고통받는 동안 곡식을 창고에 쌓아두는 일도 있었다. BC 436년에는 로마 제국에 기아가 일어나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티베르 강 속에 빠져 죽었다.
중세 유럽에서 일어났던 기아는 문화적 식량부족으로 규정된다.
자연적 원인이 작용하기는 했으나 식량부족이 심각해져 영양부족, 흑사병 같은 질병의 전염, 기근상태로까지 번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봉건사회제도·문화풍습·인구과잉 때문이었다. 중세시대에 영국제도에는 적어도 95회 이상 기아가 일어났으며 프랑스는 75건이 넘는 기아현상으로 피해를 입었다. 1235년 영국에서는 2만 명 정도 되는 런던 주민들이 기아로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인위적 기아현상은 전쟁에서 비롯되는 기아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농작물과 식량이 파손되고, 포위전술과 봉쇄작전 때문에 식량수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1500~1700년 동유럽을 괴롭혔던 기아는 동유럽 국가들이 정치적 야심으로 기본적인 식량생산과 배급을 간섭하거나 통제했기 때문에 나타난 정치적 기아였다.
전쟁으로 일어난 기아와 더불어 자연재해에서 비롯된 기아도 이 시기의 기아현상에 한몫을 했다.
헝가리에서는 기아로 부모들이 자식을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났다(1505, 1586). 러시아 또한 이 시기에 기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1600년에는 50만 명 가량 되는 러시아인들이 굶어죽었다. 19세기에는 진격부대나 방어부대가 농작물과 식량을 고의로 파괴하는 전술을 쓰는 경우가 흔했다. 1812년 러시아 제국이 나폴레옹 군대가 식량을 확보할 수 없도록 채택한 '초토화' 방침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필요한 식량까지 파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1051년 무렵 지금의 멕시코 중부에서 일어났던 기아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원주민인 톨텍 인디언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살게 되었다. 잉카 제국의 경우에는 신대륙의 다양한 식량공급원과 광범한 식량저장체제로 기아발생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톨텍 인디언과 메사베르데 지역(지금의 미국 콜로라도 주)의 인디언에게 뚜렷하게 나타났듯이, 대체로 신대륙의 인구는 구대륙 인구보다 유동적이어서 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 수 있었다.
기아현상은 세계 전역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만 각 국가들의 식량수입과 국제 구호조직들의 노력으로 피해는 줄어들고 있다.
20세기에는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을 비롯하여 산업이 발달한 국가에는 기아가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는 식량수입을 늘리거나 빠르고 효율적인 식량배급을 해서 기아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동남아시아는 앞으로도 기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연대 | 지역 | 비고 |
BC 3500경 | 이집트 |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기아 |
BC 436년 | 로마 | 수천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티베르 강에 빠져 죽음 |
AD 310년 | 브리튼 | 4만 명이 죽음 |
917~918년 | 인도 카슈미르 지방 | 대참사, 젤룸 강이 시체들로 덮임 '카슈미르 지역이 하나의 커다란 매장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온통 유골로 뒤덮여 공포를 자아냈다' |
1064~72년 | 이집트 | 7년 동안 나일 강이 범람하지 않아 식인풍습이 생김 |
1069년 | 잉글랜드 | 노르만족의 침공, 식인풍습 |
1235년 | 잉글랜드 | 런던에서 2만 명이 죽음, 사람들은 나무껍질·풀을 먹으며 연명함 |
1315~17년 | 유럽 중부 및 서부 | 1315년 봄과 여름 집중호우로 기아 발생, 중부유럽과 서유럽 인구의 10%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것으로 짐작됨 |
1333~37년 | 중국 | 대기아, 한 지역에서만 무려 4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짐.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임 |
1347~48년 | 이탈리아 | 흑사병 유행 이후 발생한 기아 |
1557년 | 러시아 |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일어났으나 특히 볼가 강 상류 지역에서 심하게 나타남. '많은 도시·촌락·도로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심하게 굶주림'. 많은 비와 심한 추위로 발생 |
1594~98년 | 인도 | 대참사, 식인, 시체방치, 흑사병 |
1600년 | 러시아 | 50만 명 사망, 흑사병 |
1630년 | 인도 데칸 고원 | 타지 마할을 세운 샤 자한이 난민구호 노력을 꾀함 전쟁, 부모들이 자식을 남에게 팜, 수라트 시 한 곳에서만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짐. 홍수 뒤에 가뭄이 일어남 |
1650~52년 | 러시아 | 폭우와 대홍수, '사람들이 톱밥을 먹고 살았음' 러시아 황제가 곡물수입을 자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 곡물가격이 높아서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 |
1677년 | 인도 하이데라바드 | 대참사, 폭우가 원인, '각 마을에 두세 사람만이 살아 남고 모든 사람이 죽었음' |
1693년 | 프랑스 | 볼테르가 볼테르가 "공포스런 기아"라고 묘사했음 |
1769년 | 프랑스 | 전인구의 5%가 죽었다고 함 |
1769~70년 | 인도 벵골 지방 | 가뭄으로 기아발생, 전인구의 1/10인 300만 명에서 1/3인 1,000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됨 |
1770년 | 동유럽 | 기아와 흑사병으로 보헤미아 지방에서 16만 8,000명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2만 명이 죽음 |
1790~92년 | 인도 봄베이·하이데 라바드·오리사 · 마드라스·구자라트 | 사망자가 너무 많아 묻지 못할 정도였음 도지 바라(Doji Bara) 또는 두개골 기아라고 부름 식인 |
1803~04년 | 인도 서부 | 가뭄·메뚜기떼·전쟁·기아인구의 이주 등으로 발생 수천 명이 죽음 |
1837~38년 | 인도 북서부지방 | 가뭄, 80만 명 사망 |
1845~49년 | 아일랜드 | 대감자기근, 수백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함 |
1866년 | 인도의 벵골과 오리사 | 강우량 부족, 150만 명 사망 |
1868년~70년 | 인도 라지푸타나 북서부· 중부 지방, 펀자브, 봄베이 | 가뭄, 기아와 열병, 라지푸타나 지방에서는 전인구의 1/4~1/3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어떤 지역에서는 가축들 가운데 90%가 죽음, 식수 부족 |
1874~75년 | 소(小)아시아 | 15만 명이 사망함 |
1876~78년 | 인도 | 가뭄, 3,6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피해를 입음. 500만 명 사망 추정 |
1876~79년 | 중국 북부지방 | 3년간의 가뭄, 어린이들을 내다 팜, 식인, 900만~1,300만 명 사망추정 |
1892~94년 | 중국 | 가뭄, 100만 명 사망추정 |
1896~97년 | 인도 | 가뭄, 질병이 널리 퍼짐, 500만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됨. 몇몇 지역에서는 구호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 |
1899~1900년 | 인도 | 가뭄, 구호노력이 널리 이루어졌으나 125만 명이 굶주림 질병환자를 포함하면 325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됨 |
1920~21년 | 중국 북부지방 | 가뭄, 2,000만 명 정도가 피해를 입었고 약 50만 명이 사망함 |
1921~22년 | 소련, 특히 우크라이나와 볼가 강 유역 | 가뭄, 막심 고리키가 미국에 원조를 요청함 구호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만~2,400만 명이 피해를 입고 125만~500만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1928~29년 | 중국 산시 성[陝西省]· 후난 성[湖南省]· 간쑤 성[甘肅省] | 철도 때문에 사망자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1877~78년에 있었던 대기아에 견줄 만큼 광범하고 심각한 기아, 산시 성에서만 약 300만 명이 사망함 |
1932~34년 | 소련, 특히 우크라이나 지방 | 집단농장화, 정부의 강제매상, 농민들의 가축도살 때문에 일어난 기아, 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1941~43년 | 그리스 | 전쟁, 사망자가 늘고 출생자가 줄어 45만 명 정도 되는 인구 감소 |
1941~42년 | 바르샤바 게토 | 전쟁, 약 4만 3,000명이 직·간접적으로 굶주려 사망 |
1941~44년 | 레닌그라드 시 | 전쟁, 3년 가까이 레닌그라드 시가 기아에 휩싸임. 100만 명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기아 때문에 사망 |
1943년 | 루안다 - 우룬디 | 3만 5,000~5만 명이 죽음 |
1943~44년 | 인도 벵골 지방 | 투기로 인해 쌀값이 엄청나게 뛰어오름. 몇 차례 흉작으로 빚어진 쌀부족이 소규모에 그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때문에 쌀을 살 수 없었음. 150만 명 사망 |
1947년 | 소련 | 흐루시초프가 스탈린과 몰로토프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힘. 볼테르가 "그들은 이런 식이었다. 곧,여러 지역에서 국민들이 굶주림으로 퉁퉁 붓거나 죽어가고 있었을 때 곡식을 해외로 수출했던 것이다" (1963년 12월 10일자 〈프라우다〉지) |
1960~61년 | 콩고 카사이 | 내란 때문에 일어난 기아, 난민들이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여 크와시오르코르병(단백질 결핍성 소아영양실조증) 이 퍼짐 |
1965년 | 인도 비하르 지방 | 가뭄, 구호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어 수천 명만이 사망함 |
1967~69년 |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 내전, 정부군이 독립투쟁 지역인 비아프라 지역을 봉쇄 하고 식량공급을 차단함. 1,500만 명 이상이 사망함 |
1968년~74년 | 사헬 지역(세네갈· 마우리타니아·말리 어퍼볼타·나이지리아· 니제르· 차드) | 가뭄, 30개 국에서 식량을 보냈으나 지방관리들의 부패, 형편없는 도로사정, 준비계획의 부재로 잘 운용되지 못함 50만 명 사망, 가축 500만 두 죽음 |
1973년 | 에티오피아 | 가뭄, 10만 명 사망,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관광사업 위축을 막기 위해 기아 발생을 공표하지 않고 외국 원조도 요청하지 않음 |
1974년 | 방글라데시 | 홍수로 전국토의 반 정도가 물에 잠겨 저장된 곡식과 자라고 있던 작물들이 파손됨, 정부가 많은 양의 쌀을 굶주린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상인들을 통해서 인도로 수출함 |
1975~79년 | 캄보디아 | 100만 명이 굶주려 죽음, 식량이나 주거대책 없이 도시인구를 대규모로 농촌에 보낸 붉은 크메르 정권의 잔혹한 정책에서 비롯, 국가경제구조가 완전히 파괴됨 |
1983~85년 | 검은 아프리카 (사헬 지역:아프리카 동부 및 남부) | UN기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22개 국가 2,200만 명이 위험한 상태라고 전하나 영양실조자와 굶주린 사람들의 숫자는 확정적이지 않음 가축과 농작물 피해도 발생함 |
朴正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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