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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상 (국보, 1962.12.20 지정)

다른 표기 언어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국보 제118호

요약 1940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출토된 고구려 때 제작된 오른쪽 다리를 넓적다리 위에 얹은 반가부좌의 자세로 왼손은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 위에 붙이고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금동불상.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17.5㎝. 1940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병기창(兵器廠)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것을 김동현이 8·15해방 후 서울로 가지고 왔다. 오른손과 팔 부분이 없어지고 곳곳에 화상의 흔적이 있으나 전체모습을 살펴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출토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현존 유일의 고구려 반가사유상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상이다.

머리에는 삼산관(三山冠)을 썼으며 약간 숙인 모습에 고졸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귀가 매우 길어 어깨에 닿아 있다. 상체는 나신으로 장신구도 없으며, 얼굴에 비해 몸이 작고 팔과 몸체가 거의 원기둥에 가까운 단순한 모습이다. 왼손은 오른쪽 발목을 잡고 있고, 오른손의 팔꿈치 이하 부분이 없어도 손을 볼에 댄 사유형(思惟形) 보살임이 쉽게 짐작된다. 상의(裳衣)는 둥근 통형(筒形)의 대좌를 덮었는데 다리 부분에는 몇 줄의 선으로 옷주름을 표시하고, 대좌 앞으로 자연스럽게 늘어진 옷자락이 상하 2단의 굴곡진 주름을 이루고 있다. 대좌는 복련으로 장식된 연화대좌이고, 오른쪽 발을 받친 족좌(足座)에는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다.

머리 뒤에 두광을 꽂았던 꼭지가 남아 있고 몸옆에는 허리로부터 늘어진 비대(紕帶)가 보인다. 이 반가상은중국 동위(東魏:534~550)나 북제 초기 반가사유상의 양식적 요소를 반영하므로 대략 6세기 후반 또는 말경의 고구려상으로 생각된다. 같은 형식이면서 좀더 발전된 양식을 보여주는 상으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경상북도 봉화 출토인 석조반가사유보살상 하반신을 들 수 있으며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양식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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