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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상

다른 표기 언어 金銅彌勒菩薩半跏像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국보(1962.12.20 지정)

요약 오른쪽 다리를 넓적다리 위에 얹은 반가부좌의 자세로 왼손은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 위에 붙이고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금동불상(→ 반가사유상). 국보로 지정된 상으로 동명의 국보가 각각 국립중앙박물관에 2구, 리움미술관에 1구 소장되어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78호)

ⓒ National Museum of Korea, Seoul/wikipedia | KOGL

국보로 지정된 상으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2.20 지정),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2.20 지정),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2.20 지정)이 있다. 동으로 주조하여 도금하였고, 보관과 보발, 입가에 미소, 천의와 상의의 유려한 옷주름이 특징이다. 장식성 또한 두드러져 여러 가지 요소가 공존며 완벽한 주조기술과 세련된 감각으로 조화시켜놓았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1962.12.20 지정)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83.2㎝. 동(銅)으로 주조하여 도금한 상으로 국보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다.

금동반가사유상 78호(오른쪽)와 83호(왼쪽)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크기나 제작수준은 삼국시대에 반가사유형의 제작과 미륵신앙이 유행했음을 알려준다.

이 상의 제작시기나 제작국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으며 출토지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1912년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창립 직후 옮겨왔다는 내력만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고 장식적인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는 도식화된 연꽃잎과 고사리 모양, 연주 무늬, 일월형으로 이루어진 장식 3개가 솟아 있다. 이러한 관은 일찍이 탑형으로 보았으나 근래에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왕관에서 기원한 일월식관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보관을 양쪽에서 묶은 2가닥의 띠와 보발이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네모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눈을 반쯤 내려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색에 잠긴 모습에서 자비의 보살형을 보는 듯하다.

콧날과 입술 등 윤곽이 비교적 예리하게 주조되었고 가슴에는 끝이 뾰족한 목걸이를 하고 있다. 두 어깨 위에 걸친 천의는 날개같이 넓어져서 그 끝이 힘있게 올라가 있고 다시 앞가슴을 지나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데, 몸을 싸고 도는 곡선이 매우 유려하다.

팔목과 팔뚝에도 팔찌를 끼고 있으며 하체에는 상의를 입었는데 옷주름은 도식화된 음각선으로 표현되었다. 상의의 끝단도 도식화된 면을 보여주지만 상의를 묶은 허리띠는 몸체와 분리되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래로 내린 왼발은 복판(伏瓣) 연꽃 형태의 족좌(足座)에 올려놓았으며, 머리 뒤에는 광배를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상은 미묘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신체를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옆면이나 뒷면에서 볼 때 곡선미가 더욱 뛰어난데, 옷주름은 평면적이면서 도식적인 면을 보여준다.

장식성 또한 두드러져 여러 가지 요소가 공존하나 이것을 완벽한 주조기술과 세련된 감각으로 조화시켜놓았다. 양식적으로는 북위양식의 잔영과 함께 입체적인 북주시대 조각의 영향을 보이고 있는데,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비교할 때 제작기술의 차이는 없으나 양식상 다소 이른 요소를 지니고 있어 6세기말경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도솔천에서 수행중인 미륵보살상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현재 일본에는 이를 명문으로 뒷받침해주는 야추 사[野中寺]의 병인년명금동반가사유상과 같은 예가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예가 없다. 신라의 경우 화랑도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되고 있으나 이 상은 제작수준에 비해 제작지역을 알 수 있는 관련자료가 없어 오직 양식적인 비교연구만 진행되고 있으며, 제작국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1962.12.20 지정)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93.5㎝. 이 상은 경주 오릉(五陵) 부근 폐사지에서 출토되었다는 설이 있을 뿐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머리에는 3면이 둥근 산 모양을 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앞으로 숙인 둥근 얼굴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 밝은 미소를 띠고 있어 소년과 같은 신선함이 느껴진다.

금동반가사유상 78호(오른쪽)와 83호(왼쪽)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목에는 가는 음각선의 삼도(三道)가 있고 상체에는 2줄로 도드라진 목걸이 이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데, 팔과 몸체는 비만하지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근육이 묘사되어 사실감이 돋보인다. 허리에 걸친 상의는 매우 얇아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며 특히 반가한 오른쪽 무릎이 힘있게 솟아오른 부분에는 옷주름이 생략되어 상 전체에 강한 생동감을 준다.

대좌를 덮어내린 상의의 옷자락은 2단의 주름을 형성했는데 조각이 깊고 사실적이다. 그밖에 몸 옆으로 내려온 허리띠나 둥근 옥장식, 둥근 대좌의 표현이 모두 섬세하면서도 정제된 완성미를 보여준다. 국보 반가사유상이 예리하면서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면 이 상은 간소하고 자연스러운 조형미를 통하여 생동감을 준다.

이러한 표현은 기본적으로 중국 북주·북제시대 반가사유상의 형식이나 조각양식을 반영하면서도 더욱 단순화되고 자연스럽게 다듬어져 조각적으로 더 발달된 단계로 보인다. 같은 유형의 국내 반가사유상으로는 평양 평천리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나 경주 단석산마애반가사유상이 있으며 제작지역은 백제와 신라의 2가지 의견이 있다. 그러나 1966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석조반가사유상의 하반신(경북대학교 소장)이 발견된 후 두 상의 형태나 옷주름처리에서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일본 교토[京都] 고류 사[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과 모습이 매우 비슷하여 오랫동안 주목받아 왔는데 이 고류 사의 창시자인 진하승(秦何勝)이 신라와 문화적인 교류가 있었다든가 혹은 신라에서 전해진 상이 절에 모셔졌다든지 하는 일본의 기록이 있어 이 상이 백제보다는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크게 해준다. 특히 고류 사의 상은 메이지[明治] 시대에 보수되었는데 그 이전의 머리모습을 보면 국보 반가사유상이나 황룡사지 출토 금동보살 머리 등 한국의 상들과 얼굴인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밖에도 반가사유형의 보살상은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된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특히 신라에서는 미래에 부처가 될 미륵보살과 사회의 청년지도자였던 화랑과의 특수한 연관 속에서 신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연대는 대체로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 (국보, 1962.12.20 지정)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17.5㎝. 1940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병기창(兵器廠)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것을 김동현이 8·15해방 후 서울로 가지고 왔다. 오른손과 팔 부분이 없어지고 곳곳에 화상의 흔적이 있으나 전체모습을 살펴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출토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현존 유일의 고구려 반가사유상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상이다.

머리에는 삼산관(三山冠)을 썼으며 약간 숙인 모습에 고졸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귀가 매우 길어 어깨에 닿아 있다. 상체는 나신으로 장신구도 없으며, 얼굴에 비해 몸이 작고 팔과 몸체가 거의 원기둥에 가까운 단순한 모습이다. 왼손은 오른쪽 발목을 잡고 있고, 오른손의 팔꿈치 이하 부분이 없어도 손을 볼에 댄 사유형(思惟形) 보살임이 쉽게 짐작된다. 상의(裳衣)는 둥근 통형(筒形)의 대좌를 덮었는데 다리 부분에는 몇 줄의 선으로 옷주름을 표시하고, 대좌 앞으로 자연스럽게 늘어진 옷자락이 상하 2단의 굴곡진 주름을 이루고 있다. 대좌는 복련으로 장식된 연화대좌이고, 오른쪽 발을 받친 족좌(足座)에는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다.

머리 뒤에 두광을 꽂았던 꼭지가 남아 있고 몸옆에는 허리로부터 늘어진 비대(紕帶)가 보인다. 이 반가상은중국 동위(東魏:534~550)나 북제 초기 반가사유상의 양식적 요소를 반영하므로 대략 6세기 후반 또는 말경의 고구려상으로 생각된다. 같은 형식이면서 좀더 발전된 양식을 보여주는 상으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경상북도 봉화 출토인 석조반가사유보살상 하반신을 들 수 있으며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양식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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