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정확한 제작시기나 제작국가를 알 수 없는 오른쪽 다리를 넓적다리 위에 얹은 반가부좌의 자세로 왼손은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 위에 붙이고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금동불상.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83.2㎝. 동(銅)으로 주조하여 도금한 상으로 국보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다.
그 크기나 제작수준은 삼국시대에 반가사유형의 제작과 미륵신앙이 유행했음을 알려준다.
이 상의 제작시기나 제작국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으며 출토지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1912년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창립 직후 옮겨왔다는 내력만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고 장식적인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는 도식화된 연꽃잎과 고사리 모양, 연주 무늬, 일월형으로 이루어진 장식 3개가 솟아 있다. 이러한 관은 일찍이 탑형으로 보았으나 근래에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왕관에서 기원한 일월식관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보관을 양쪽에서 묶은 2가닥의 띠와 보발이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네모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눈을 반쯤 내려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색에 잠긴 모습에서 자비의 보살형을 보는 듯하다.
콧날과 입술 등 윤곽이 비교적 예리하게 주조되었고 가슴에는 끝이 뾰족한 목걸이를 하고 있다. 두 어깨 위에 걸친 천의는 날개같이 넓어져서 그 끝이 힘있게 올라가 있고 다시 앞가슴을 지나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데, 몸을 싸고 도는 곡선이 매우 유려하다.
팔목과 팔뚝에도 팔찌를 끼고 있으며 하체에는 상의를 입었는데 옷주름은 도식화된 음각선으로 표현되었다. 상의의 끝단도 도식화된 면을 보여주지만 상의를 묶은 허리띠는 몸체와 분리되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래로 내린 왼발은 복판(伏瓣) 연꽃 형태의 족좌(足座)에 올려놓았으며, 머리 뒤에는 광배를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상은 미묘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신체를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옆면이나 뒷면에서 볼 때 곡선미가 더욱 뛰어난데, 옷주름은 평면적이면서 도식적인 면을 보여준다.
장식성 또한 두드러져 여러 가지 요소가 공존하나 이것을 완벽한 주조기술과 세련된 감각으로 조화시켜놓았다. 양식적으로는 북위양식의 잔영과 함께 입체적인 북주시대 조각의 영향을 보이고 있는데,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비교할 때 제작기술의 차이는 없으나 양식상 다소 이른 요소를 지니고 있어 6세기말경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도솔천에서 수행중인 미륵보살상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현재 일본에는 이를 명문으로 뒷받침해주는 야추 사[野中寺]의 병인년명금동반가사유상과 같은 예가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예가 없다. 신라의 경우 화랑도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되고 있으나 이 상은 제작수준에 비해 제작지역을 알 수 있는 관련자료가 없어 오직 양식적인 비교연구만 진행되고 있으며, 제작국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1962.12.20 지정)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