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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라남도 남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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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52,853 (2024) |
면적 | 462.26㎢ |
행정구역 | 1개읍 6개면 5개동 |
사이트 | http://www.gwangyang.go.kr/ |
요약 전라남도 남동부에 있는 시. 동쪽의 섬진강을 경계로 하동군과 접하여 도계를 이루고 있다.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도시를 이루었다. 금호동에 세계최대 규모의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이후 공업도시로 성장하였고, 태인동의 산업단지와 도이동의 광양항이 설립되면서 산업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 면적 462.26㎢, 인구 152,853(2024).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동부에 있는 시.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시 광양시가 되었다. 광양제철소의 입지가 결정된 1981년 전까지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김·조개류의 양식업이 활발했으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산업구조가 2·3차산업 중심으로 전환되어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중심지이자 해외무역의 전진기지로서 발전해왔다.
이 지역은 1989년부터 광양군 골약면 앞바다를 메워 도시로 조성하였고, 국내 최대 규모인 컨테이너 항 광양항이 건설되면서 산업도시로써 자리잡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광양읍·봉강면·옥룡면·옥곡면·진상면·진월면·다압면·중마동·금호동·광영동·태인동·골약동 등 1개읍 6개면 5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10개동). 시청소재지는 광양시 시청로이다. 면적 462.26㎢, 인구 152,853(2024).
연혁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유적이 광양읍 일대에서 발견되었으나, 그 분포는 많지 않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마로현이었으나, 757년 희양현으로 고치고 승평군의 영현이 되었다. 통일신라 말엽 풍수지리설로 유명한 도선이 이곳 백운산 줄기인 백계산의 지기를 보고 옥룡사를 창건하여 독자적인 선문을 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광양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108년 감무가 파견되어 독립했다. 이 무렵 광양김씨가 벌족으로 정치무대에서 활동했다. 남해안 연변의 다른 군현들과 같이 고려말 왜구의 침탈이 심했다. 조선초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 광양현이 되었다.
1869, 1889년 2차례에 걸쳐 민란이 발생했으며 1894년 동학혁명 때에도 이곳에서 일본군과 격전이 있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6년 여러 섬들을 돌산군에 이관시키고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1923, 1924년의 소작쟁의, 1932년 금광 광부들의 동맹파업, 1934년 독서회사건 등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1949년에는 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11월 광양에 대규모 제철공장 건립이 확정되어 1986년 골약면과 태금면을 분리, 광양지구 출장소를 신설했다가 1989년 동광양시로 승격, 분리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으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어왔던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되어 광양시가 되었다.
자연환경
전체면적의 약 73%가 산지를 이루며, 소백산맥의 줄기인 백운산(1,218m)을 중심으로 시의 북쪽에 형제봉(861m)·도솔봉(1,123m)·매봉(865m) 등이 이어져 있다. 섬진강이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고,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서천·동천·수어천이 각각 세 갈래로 나뉘어 남쪽으로 흐르다가 광양만으로 유입된다.
남부 해안지역에는 간석지를 개간한 평야지역이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광양읍·진상면·옥곡면 등의 하천 하류지역에는 비옥한 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백운저수지·수어지는 주요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광양제철소 건설과 함께 태인도·금호도 등이 매립되었고 간석지가 간척되어 광양만 내에 있는 섬들은 점차 육지화되고 있다.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나타내며, 통합 전 광양시 지역은 연평균기온 13.7℃ 내외, 1월평균기온 0.1℃ 내외, 8월평균기온 27.8℃ 내외, 연평균강수량 1,296㎜이다. 한편 통합 전 동광양시 지역은 연평균기온 14.6℃ 내외, 1월평균기온 0.1℃ 내외, 8월평균기온 27.8℃ 내외, 연평균강수량은 1,687㎜이다. 특히 섬진강 하류는 우리나라 최대 다우지 가운데 하나이다. 온대림의 분포지역과 일치하며, 동백나무·대나무·차나무 등이 자생한다.
인구
통합 전 동광양시는 전체적으로 인구 유입이 유출보다 많은 지역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다. 광양출장소였던 1986년 당시 3만 7,308명이었으나 1987년 5만 3,342명, 1988년 6만 1,235명, 1991년에는 7만 118명으로 증가하여, 6년 동안 무려 2배 가까이 인구가 증가했다.
성별 구성을 보면 남자가 전체 인구의 60.3%를 차지하여 이 지역이 철강을 비롯한 중공업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통합 전 광양군의 인구변화를 보면 1960년에는 8만 7,016명, 1970년에는 9만 4,451명으로 10년간에 7,435명이 증가하여 8.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1980년에는 7만 8,696명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했고, 1987년 광양출장소 지역이 동광양시로 분리되었으나 군지역의 인구는 오히려 1988년 7만 8,000명을 정점으로 계속 증가하여 1990년에는 8만 5,440명에 이르렀다.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의 통합으로 인구가 12만 7,735명이 되었으며 이후로도 공업도시로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광양제철소가 시내·외의 인구를 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인구는 2010년 14만 5,512명, 2015년 15만 3,587명으로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5만 2,853명이며 가구수는 7만 345가구, 가구당 인구는 2.17명이다. 행정구역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중마동과 광영동을 중심으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인구 비율이 높아졌다. 군 전체 인구의 35%가 중마동(5만 7,674명)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광양읍(4만 8,013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가장 인구가 적게 거주하는 지역은 태인동으로 1,568명이 살고있다(2024).
산업과 교통
총경지면적 71.92㎢ 가운데 논이 52.43㎢, 밭이 19.49㎢이며, 경지율은 16%이다. 농업가구수는 7,155가구로 총가구의 15%를 차지한다(2006). 주곡작물인 쌀·보리를 비롯하여 오이·무·배추·양배추·토마토·양송이 등의 시설원예작물이 생산되며, 인근 대도시와 서울로 출하되고 있다. 1968년 이후 진상면·다압면 일대에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여 66.97㎢의 면적에서 연간 9,418t이 생산되는 대규모 밤 산지가 되었다. 이밖에 임산물로는 은행·표고버섯이 있다.
광양만은 제철소가 들어서기 전까지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수온이 적당하여 김·조개류 등 각종 양식업이 활발했으나 해외 무역의 전진기지로 발전되기 시작한 이후로 바다가 매립되고 오염되어 수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어업인구를 보면 1987년 5,699명이었으나 1990년 2,054명으로 절반 정도 감소했다. 수산물 어획고 역시 1987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7년 현재 어업인구는 1,730명, 어업가구수는 499가구로 총 가구의 0.8%에 불과하며, 전어·낙지가 주로 어획된다.
총 156개의 공장에서 1만 2,026명(2006)의 종업원이 종사한다. 또다른 공단으로서 광양제철의 1차 연관단지에는 석유화학 8개 업체, 비금속 12개 업체, 1차금속 13개 업체, 조립금속 6개 업체, 기계장비 및 전기기계 3개 업체, 지원시설 14개 업체 등 모두 56개 업체가 들어서 있으나, 입주희망업체가 늘어 약 3.97㎢ 규모의 새로운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공단 규모에 비해 컨테이너 항구 시설이 크게 부족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2011년까지 1차 컨테이너 항구를 완공할 계획이다. 그밖에 초남산업단지와 수어천부지 등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업은 원광석이 약간 생산될 뿐 매우 저조하다. 상설시장으로 광양매일시장과 중앙시장이 있으며, 5일 정기시장으로 읍내·옥곡·섬거장이 열리고 있다. 특히 1977년 남해고속도로가 완공된 뒤 진월면 주민들은 섬거장보다는 옥곡장의 이용이 잦아졌다.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이 시의 남부를 동서로 지나며, 남해고속도로와 남부공업단지를 연결하는 산업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또한 태인동과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를 잇는 1.1km의 교량이 건설되어 있다. 광양읍을 기점으로 순천·하동 방면 국도가 나 있다. 도로총길이 702.63km, 도로포장률 66.6%이다(2006).
유물·유적·관광
문화재로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1, 사적 1, 천연기념물 1, 무형문화재 1)와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5, 기념물 5, 무형문화재 1), 무형문화재 1점이 있다. 광양읍 덕례리, 봉강면 지곡리, 옥곡면 원월리 일대에 120여 개에 달하는 고인돌이 분포한다.
불교유적으로 중흥산성3층석탑(보물 제112호)·중흥산성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중흥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과 옥룡사·중흥사·백운사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광양향교·봉양사(鳳陽祠)가 대표적이며, 중흥산성지·마로산성지 등의 산성터가 있다. 이밖에 광양성황동3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광양김시식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와 장도장(粧刀匠: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궁시장(弓矢匠: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 광양유당공원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5호)가 있다. 광양만의 태인도는 우리나라 김양식이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관광자원으로는 백운산, 섬진강과 광양만이 조화된 자연경관과 광양만제철소를 핵으로 하는 산업관광자원이 대표적이다. 백운산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자연경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경관도 뛰어나다. 망덕리 해수욕장은 여름철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한려수도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해운정도 있다. 아직은 각종 관광 편의시설이 미비하지만, 광양만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산업관광지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광양향교와 봉양사 등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7년 설립된 사립 광동학교로, 1913년 폐교되었으나 1922년에 금천사숙으로 재건되어 1943년에 다압북국민학교(1996년 다압초등학교와 통합)가 되었다. 또한 1907년에 사립 희양학교가 세워져 1910년에 공립 광양보통학교가 되었다.
교육기관은 2018년 기준 유치원 38개소,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으며, 광양보건대학교와 한려대학교가 있다. 공공도서관은 6개관으로 지자체 소속 4개관(광양중앙도서관, 광양중마도서관, 광양희망도서관, 광양용강도서관), 교육청 소속 2개관(광양공공도서관, 광양평생교육관) 등이 있다.
이 지방 특유의 민속놀이로는 백운산에서 자생하는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골리수를 받아 이를 즐기며 마시는 약수제가 있다. 이 행사 기간에 궁도대회·국악공연·농악놀이가 함께 이루어지는데, 특히 광양농악은 버꾸놀이에서 북놀이가 더 행해지며, 김매기농악이 따로 있어 부락간의 접전이 벌어진다. 설화로는 〈최산두의 전설〉·〈옥룡사의 연기설화〉·〈살구나무귀신이야기〉 등이 있고, 민요로는 노동요가 있을 듯하나 조사된 것이 없고, 〈상여소리〉·〈지경닺는 소리〉 등이 있다.
2018년 기준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1개소, 병원 3개소, 의원 62개소, 요양병원 4개소, 치과의원 41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2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 22개소, 여성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10개소, 장애인복지시설 2개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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