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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4세기경부터 고대국가로 팽창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여 668년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될 때까지의 고구려 시대의 조각 미술.
372년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불교조각이 대종을 이루었다. 지리적으로 중국의 화북지역과 가까웠던 탓으로 북위와 동위 및 북제(北齊)·북주(北周)의 북조계 불상양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개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불교조각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는 539년에 제작된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으로, 이 상에서는 북위 후기와 동위 초기의 양식을 토대로 보다 단순하고 강직한 느낌을 주는 고구려적인 특징을 형성하였다.
가늘고 긴 얼굴 위를 엷게 흐르는 심오한 미소, 예리한 각법, 힘있게 뻗친 옷자락 등은 북위불에 기반을 두고 고유화된 6세기 전반경 고구려 불교조각의 특색을 보여준다(→ 불상). 이러한 양태는 56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571년 추정의 신묘명금동삼존불입상을 거치면서 광배 무늬의 입체화와 더불어 얼굴 모습이 둥글게 되고 각법과 옷자락 등이 질감에 맞추어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6세기 후반경의 유품으로 추측되는 평양 부근 원오리 폐사지에서 출토된 니불들은 전체적으로 세련된 조각감각과 함께 사실적으로 진전된 양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동위불상에 기반을 두고 변형된 평안남도 평천리 출토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의 양식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후대의 반가사유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중국 북조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양식을 수용·발전시키면서 우리나라 고대조각의 전개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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