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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다른 표기 언어 forced labour , 强制勞動

요약 비교적 큰 집단이 강압을 받는 상태에서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수행하는 노동.
slave labour라고도 함.

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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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력만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노예상태와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강제노동은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특히 나치 독일이나 소련(특히 스탈린 시대)과 같은 전체주의체제에서는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이들 체제에서는 반대파로 의심을 받거나 인종이나 국가적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긴 사람들을 즉각 체포하여 오랫동안 또는 무기한으로 집단수용소나 멀리 떨어진 노동수용소, 공장 등에 가두어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동하도록 했다.

1930년대 독일에서 권력을 잡은 나치는 나치 체제를 반대하거나 체제유지에 이롭지 않다고 여긴 사람들을 집단수용소에 대규모로 감금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뒤 노동력이 크게 필요해지자 나치 당국은 집단수용된 사람들로 노동력을 추가공급하기 시작했다. 1944년말에는 전쟁포로(주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200만 명 가량과 유럽 내 독일 점령지역에서 끌려온 남녀노소 750만 명 정도가 독일의 병기공장·화학공장·광산·농장·제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 독일에 왔던 사람들은 '지원자'였지만, 1941년 이후에는 절대다수가 화물열차에 실려 독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섬뜩할 만큼 가혹하고 나쁜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질병·굶주림·과로·학대로 절반이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으며 나치 당국은 가혹한 상황 때문에 더이상 노동할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몰살했다.

소련도 혁명 초기에 강제노동을 폭넓게 이용했다(→ 굴라크). 1923년 소련비밀경찰은 백해에 있는 솔로베츠키 섬에 집단수용소를 세우고 우선 정치범들을 강제노동에 투입했다. 그후 비밀경찰은 러시아 공화국 북부와 시베리아에 많은 집단노동수용소를 세워 1920년대말부터 운용했다. 19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 때 수백 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체포되면서 소련 전역에는 수백 개의 노동수용소가 설치되었으며 소련의 집단수용소 체제는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소련 북부의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제재업과 어업, 백해-발트 해 운하건설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계획 부문에서 일했고 시베리아에 있는 수용자들은 제재업과 광업에 투입되었다. 소련 집단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러시아의 추운 기후를 견디기 힘든 얇은 옷을 입었고 목숨을 연명하기에도 부족한 식량을 배급받았다. 1924~53년까지 소련에 있는 노동수용소에서 죽은 사람은 500만 명에서 1,000만 명까지 될 것으로 보인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 사회가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강제노동은 크게 줄어들었다.

강제노동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과 1950~7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체제(1975~79) 또한 강제노동을 아주 야만스러운 방법으로 이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7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강제노동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91개 회원국이 이를 비준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독재국가나 전체주의국가에서는 교활한 방법으로 아직도 강제노동을 계속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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