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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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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갑산파'라는 명칭은 김일성의 유명한 항일무장투쟁인 보천보 전투가 일어났던 갑산지역의 명칭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1941년 일본군의 대토벌을 피해 소·만국경 일대로 이동하기까지 동만주지역에서 독립투쟁을 한 김일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세력이다. 갑산파는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확보한 정통성을 내세워 다른 정치세력들을 거세함으로써 단일적 지도체계를 구축했다. 1970년대초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로의 권력계승 과정에서 빨치산 세대가 퇴조하고 혁명 2세대가 부상하면서 그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북한에서는 '갑산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남한을 비롯한 반공주의 진영에서 북한의 지도부가 '지역성과 파벌성'에 기초해 정치권력을 획득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호칭이다.

'갑산파'라는 명칭은 김일성의 유명한 항일무장투쟁인 보천보 전투가 일어났던 갑산지역의 명칭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갑산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남한을 비롯한 반공주의진영에서 북한의 지도부가 '지역성과 파벌성'에 기초, 정치권력을 획득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부른 이름이었다. 이들은 8·15해방 후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다른 정치세력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 지도집단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1941년 일본군의 대토벌을 피해서 소·만국경 일대로 이동하기까지 동만주지역에서 독립투쟁을 한 김일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세력이다.

해방 후 인민민주주의혁명 과정에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일제잔재의 척결을 통해 반제반봉건의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대중들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다고 내세우고 있다. 갑산파에 소속된 주요인물로는 김일성을 포함해 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김일(金一)·강건 등 북한정권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빨치산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확보한 정통성을 내세워 다른 정치세력들을 거세함으로써 단일적 지도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즉 갑산파와 여타 정치세력 간의 권력투쟁은 해방 이후 '인민민주주의혁명' 과정과 6·25전쟁, 그리고 1950년대 중반에 진행된 '반종파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갑산파의 승리로 귀착, 김일성 중심의 확고한 권력기반이 구축되었다.

이들은 1970년대초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金正日)로의 권력계승 과정에서 빨치산 세대가 퇴조하고 혁명 2세대가 부상하면서 그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축소되었으나 아직도 북한의 주요한 요직은 이들 빨치산 그룹이 담당하고 있다.→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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