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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0. 3, 함북 어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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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4. 3. 9, 평양 |
국적 | 북한 |
요약
북한의 대외관계에 많은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할 때는 대부분 참석했던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의 그의 외교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1979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대남 관계에도 앞장섰다.
일제강점기에 동만주 일대에서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에 가담했다. 1954년 3월 내각 부수상 겸 농업상의 직책에 있으면서 전후 복구시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에 관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진행시켰다. 1959년 1월 북한의 내각 제1부수상으로 승격되었으며, 1966년 10월에는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동만주 일대에서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에 가담했다. 그는 1932년 지하당 및 대중단체사업을 벌였으며, 1935년 10월 항일무장 대오에 들어선 후 주요 군사정치간부로 많은 활동을 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북조선공산당 평북 당비서(1945. 11), 북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 겸 정치위원(1946. 4) 등을 지냈으며, 그해 9월 제1사단 문화부사단장, 인민군사령부 문화부사령관, 민족보위성 부상으로 인민군 강화에 노력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민족보위성 부상, 내무성 정치국장,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평남도위원회 위원장의 직책에 있으면서 주로 후방의 전시업무를 관장했다.
1953년 6월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비서, 8월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상무위원·정치위원·군사위원 등의 요직을 맡았다. 1954년 3월 내각 부수상 겸 농업상의 직책에 있으면서 전후 복구시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에 관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진행시켰다. 1959년 1월 북한의 내각 제1부수상으로 승격되었으며, 1966년 10월에는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가 되었다.
그는 북한의 대외관계에 많은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할 때는 대부분 참석했던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의 그의 외교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1979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대남(對南) 관계에도 앞장섰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때부터 계속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으며 북한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외에 국기훈장 제1급, 자유독립훈장 제1급, 공화국창건 기념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그는 1984년 오랜 병고 끝에 75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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